주민센터 소개
연혁
1951. 9. 1 | 시구제 실시를 전제로 한 14개洞을 관할하는 중부출장소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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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7. 25 | 부산시 구제실시에 따라 중구 설치(10개동) |
1977. 1. 1 | 동광동일부를 광복동, 남포동에 편입 |
1982. 5. 1 | 법정동 경제조정 - 동광동 1가 일부 → 광복동 1가에 편입 - 동광동 1가 일부 → 남포동 1가에 편입 |
1999. 1. 1 | 18개통73개반에서 14개통 58개반으로 조정 |
유래 및 특성
지명 유래
- 왜관의 출입문은 수문(守門)을 비롯하여 수문(水文)과 북문(北門)이 있었는데 수문(守門)의 통행이 가장 많았 다. 이 수문(守門)을 비롯, 재판옥지(裁判屋址), 동향사지 (東向寺址) 등이 오늘날의 동광동에 해당된다.
- 특히 수문(守門)은 왜관과 동래로 통하는 공식문으로 동래부와 부산진에서 파견하는 장교 각1명과 통사 2명, 문지기 2명이 10일 교대로 근무하며 조석으로 문을 열고 닫으며, 동래부에서 발행하는 첩문(帖門)을 가진 자가 아니면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 수문은 현재의 동광초등학교의 동편에 있었는데 왜관에 서 사망한 일인들의 관구(棺柩)를 운반할 때만 사용했기 때문에 무상문(無相門)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북문은 대청동의 연혁에서와 같이 평상시에는 늘 닫아두고 연향이 있을 때만 사용하였다. 동광동은 초량왜관시대의 동관(東館)이 위치하였다.
- 동관은 바로 일본에서 오는 배가 정착하는 곳이며 왜관 의 최고책임자인 관수(館守)의 집과 직접 거래가 이루어 지는 개시대청(開市大廳)이 있어 일본조계가 되자 바로 본정(本町)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 해방 후 일본식 지명의 폐기에 따라 동관이 있던 자리 라는데 동관동으로 돌이켜져야 옳으나 발음의 어려움과 이웃 광복동과의 관계상 광복동 동쪽에 위치하는 점 등 으로 동광동(東光洞)으로 바뀌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 것 이다.
동 특성
- 남북으로(1.3㎞)길게 도심상가지역과 주거 밀집지역으로 형성
- 백산기념관, 용두산공원, 40계단문화관, 고미술,화랑, 전시관이 산재된 문화거리 형성
- 인쇄소, 출판사, 금융업 등의 업소가 밀집된 서비스업 중심상가지역
기본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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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0.17㎢ -
남자인구수
1,173명 -
공무원수
8명 -
세대수
1,538명 -
여자인구수
1,133명 -
통반
14개통58개반
- 담당부서 : 동광동
- 연락처 : 051-600-6324
- 최종수정일 : 2019-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