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 제시대 후쿠다별장터에 메리놀의원 개원, 그리고 가톨릭센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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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6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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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홍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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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업의 중구이야기 78

메리놀수녀회 의원 개원해 진료
가톨릭센터에 공연, 시민강좌, 전시
복음 선교, 시민 문화센터 역할
가톨릭센터는 중구로71(옛번지 복병동81-8)에 있어서 가톨릭 부산 교구청에서 문화선교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문화센터이다. 일제강점기 땐 `후쿠다별장'(福田別莊)이 있었고 해방 후엔 적산가옥으로 등재되어 경상남도 관재국에서 관리하다가 1950년 5월 1일 `메리놀의원'으로 개원하여 부산의 가난하고 병약한 환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펼쳐온 곳이다.
이 터가 일본인 손에 넘어가게 된 경위가 기가 막힌다. 당시 부산에 터를 잡은 일본인들은 부산 땅에 그들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그들이 침점(侵占)한 토지는 절영도를 비롯하여 전관거류지를 중심으로 서쪽은 대청, 보수, 대신, 부민동 일대까지 이르렀고, 동쪽은 영주, 수정, 좌천, 범일동 일원에 걸쳐 방대하였다. 이들은 팔려는 원매자(願賣者)만 있으면 거의 남김없이 사들였다. 이들 중에는 한국정부의 소유인 공유목장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공터가 되어 있는 것을 기회로 소리 소문 없이 그 땅에 임의로 집을 짓고 자기 땅으로 삼아 팔거나, 종중(宗中) 재산이나 공동묘지를 개인재산인양 속여 일본인들에게 매각하는 사례도 있었다.
부민정 나무시장이었다가 부평정이 신설되자 부평시장이 된 사병산록(四屛山麓) 대원봉(大園峰, 지금의 가톨릭센터 일원)을 부평정에 거주하는 조경화, 윤래원 등이 개인재산이라 속이고 일본인 후쿠다에게 250원 받고 팔아 후쿠다 소유가 된다. 광복동 용두산 아래(용두산맨션 자리) `후쿠다 양조장'을 경영하고 있던 후쿠다 마쓰호에(福田增兵衛)는 대마도 출신으로 1871년 조선(부산)에 건너와 무역상과 해운업을 하면서 1887년 청주와 장유(醬油, 간장과 식유)를 양조하여 당대에 거부가 된다. 후쿠다는 조선인에게 매입한 이 땅에 별장 `향양원'(向陽園)을 꾸몄다. `향양'이란 이름은 당시 조선통감 이토오(伊藤博文)가 후쿠다 별장에서 숙박할 때 이곳 양조장에서 만든 청주 코오(向陽)의 품질이 우수하다고 칭찬하여 `향양'이라 명명한 것이 전국에 이름을 날리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방 후 이 터를 사들인 미국 메리놀수녀회는 이곳 시설을 이용하여 전쟁 피란민들을 위한 병원(메리놀의원)을 개원하여 진료소로 출발한다. 그리고 헐벗고 돈 없어서 진료 받지 못하는 조선의 백성들을 무료진료하기 시작하였다. 1962년 동광동 5가 지금의 메리놀병원으로 옮겨가기 전까지였다. 1964년 메리놀병원이 옮겨간 터에 천주교 부산교구의 교구청이 건립된다(천주교 부산교구청은 이보다 앞선 1957년 4월 중앙성당 내 중앙본당 사제관 2층에 교구청을 두었으며, 5월 30일 선성식 후에는 중앙성당을 주교좌성당으로 지정하였다. 초대 교구장은 최재선 주교였다). 1982년 4월 30일 가톨릭센터를 개관한다. 교회 본연의 사명인 복음 전파 및 지역사회문화발전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다. 교구 설정 30주년이 지난 1988년 이갑수 주교(제2대)는 부산 가톨릭대학교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그해 12월 20일 문교부로부터 학교법인 성모학원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한다. 신입생 18명, 편입생 7명으로 개교하여 1998년 부산가톨릭대학출신 14명이 처음으로 사제(司祭)로 서품(敍品)되었다. 1997년에는 교구청을 수영구 남천동 남천성당으로 이전한다. 2000년 5월 3일에는 부산평화방송을 개국한다. 현재 천주교 부산교구의 성직자는 주교 2명, 한국인 신부 354명, 외국인 신부 5명 등이다. 관할 성당은 부산 78개(준본당 1개 포함), 울산 대리구 26개, 김해 9개, 밀양 3개, 양산 6개 등이다.
가톨릭센터는 각종 공연과 시민강좌, 전시, 교육, 음악감상회, 영화제, 모임 등을 개최함으로써 가톨릭 복음 선교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의 문화센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상 1층, 지상 10층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8층에는 가톨릭 신문사, 9층과 10층에는 평화방송이 들어서 있다. 가톨릭 소극장은 200석 규모로 각종 문화공연 및 영화상영관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고, 대청갤러리는 198㎡(60평) 규모로 평면, 입체 전시 등이 가능하다. 교육실은 30석, 40석, 100석, 200석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가톨릭센터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경찰이 쏘는 최루탄과 추포를 피해 숨어 들어오는 시민과 학생, 항쟁의 지도부를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되기도 하였다. 1999년부터 부산의 새로운 문화집결지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음악, 연극 등의 공연을 집중적으로 개최하면서 부산의 복합문화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의:부산민학회 255-5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