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대중가요연구가에게 듣는다 - 부산과 그 때 그 시절 노래 3 / 6.25와 부산의 노래

1953년 1월 6.25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부산의 다대포 앞바다에는 대 참사가 일어났다. 여수에서 부산 간을 운항하는 화객선 창경호가 강풍을 만나 침몰했다. 당시 승선인원 236명 중 229명이 사망하고 겨우 7명만 목숨을 건진 사건이다. 화객선 창경호는 1943년 세계 제2차대전 때 연합군 비행기의 폭격을 받아 목포 앞바다에 침몰된 일본의 관부연락선 천신환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이 배를 건져내 수리 후 창경호로 이름을 바꾸고 여수에서 부산 간을 운항하게 되었다.
이후 천신환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갈 무렵 1956년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방운아가 부른 노래 `여수야화' 2절 가사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가 있다. "바람찬 돛대 머리 갈매기 슬피 울 때 내 사랑 싣고 가는 부산행 천신환아 온다는 기약 없이 간다는 인사 없이 기적만 남겨 두고 무심히 떠나가네" 이 노래는 서구 남부민동 소재에 있던 미도파 레코드에서 출반되어 호남은 물론 경상도 지방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은 노래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진 직후 평안북도 창성 출신의 가수 손인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서울 중앙청 공보과 소속 녹음기사로 입사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손로원 작사 라화랑 작곡 손인호의 노래 `함경도 사나이'는 사십계단과 남포동을 주제로 한 노래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노래이다.
이 시기 평안남도 안주 출신의 한복남이 운영하는 서구 아미동 소재에 있던 도미도 레코드에서는 일사후퇴 때 끊어진 한강다리를 원망이라도 하듯 손로원 작사 최병호 작곡 `한강'이 심연옥의 노래로 발표되어 그 시절의 한을 담고 있다. "한 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 어제 밤 이슬비에 목 메여 우는 구나 떠나간 그 옛님은 언제나 오나 기나긴 한강 줄기 끊임없이 흐른다" 1954년 부산역에는 귀환하는 피난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사십계단을 주제로 한 박재흥의 `경상도 아가씨'와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의 노래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출반되어 정들은 부산 항구를 떠나는 피난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음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요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이 노래의 전주곡은 열차가 출발하는 것을 착안해서 만들어졌으며 전쟁가요 삼대곡 중에서 가장 히트한 노래이다.
이 시기 서구 아미동 소재에 있는 도미도 레코드에서는 송도와 오륙도를 주제로 한 허민 작사 한복남 작곡 `마음의 부산항'이 허민의 노래로 발표됐다. `등대불 깜빡이는 부산항 파도 멀리 쌍고동 울어 울어 헤어진 사람아 오륙도 넘어 갈 때 나리든 굳은비 아- 떠나온 부산 항구 마음의 부산 항구' 이 노래는 1961년 손인호가 리바이벌해 `해운대 에레지'와 함께 당시 사춘기에 있던 젊은 연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음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요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서울 가는 십이열차에 기대 앉아 젊은 나그네
시름없이 내다보는 창밖에 등불이 존다
쓰라린 피난살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끊지 못할 순정 때문에
기적도 목이 메여 소리 높이 우는 구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 네이버 카페 `옛날가요 보존회' (//cafe.naver.com/chonguk49)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