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남포동 주제로 한 `휘파람 마도로스' 인기

`휘파람 마도로스'
배 닻줄을 감으며 떠나가는
뱃머리 순정으로
가득 찬 이십대 마도로스다.
항구를 돌아서면 남포동이 그리워
등대불 바라보며 아- 휘파람 분다
쌍고동을 울리면서 흘러가는
뱃머리 사랑으로
가득 찬 청년에 마도로스다.
저달이 뜰때마다 아가씨가 그리워
데크에 걸터앉아 아 아 휘파람 분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우리 대중가요의 특성은 애조를 띤 음조에서 밝은 성향으로 바뀌어 갔다. 1960년 최치수 작사 김성근 작곡 김길순이 부른 노래 `청춘항구'는 님을 기다리는 항구 아가씨의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다. "소근소근 청춘항구 남포동의 밤거리 십자성의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누구를 기다리나 누구를 만나려나 항구아씨 그 모습 아 아 애달퍼라 사랑의 항구" 가수 김길순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미 팔군 쇼무대에서 제일소녀 가극단에서 활동했다. 대표곡은 `화초기생' `거문고 탄식' `마도로스를 뜬 사랑' 등이 있다.
1960년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최갑석이 부른 노래 `그리워라 부산항'은 정든 님과 다정하게 거닐던 그 시절의 남포동을 노래한다. "사투리도 정든 항구 남쪽이라 부산항 포도등불 붉게 피고 꽃이 피는 그날 밤 정든 님 손을 잡고 걸어보던 남포동 무정한 기적소리 무정한 기적소리 서러울사 이별이여" 가수 최갑석은 테너에 가까운 발성법을 구사하며 기교면에서도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 난 50년대가 낳은 불멸의 명가수로 꼽을 수가 있다.
평양 출신의 가수 윤일로는 1959년 `항구의 사랑'에 이어 1961년에는 남포동을 주제로 한 윤일로 작사 작곡 `내사랑 희야'를 출반해 부산 남포동에 각별한 사랑을 나타냈다. "남포동 거리에서 그대와 헤어질 때 끝없는 아쉬움에 흐느껴 울던 희야 희야 지금은 어디서 지난날 추억을 원망 말어라 못맺을 사랑에 운명인 것을 희야 희야 내사랑 희야"
1962년 마도로스 노래의 황제로 불리는 백야성은 남포동을 주제로 한 경쾌한 리듬의 노래 김영일 작사 김성근 작곡의 `휘파람 마도로스'를 출반해 부산 마도로스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배 닻줄을 감으며 떠나가는 뱃머리 순정으로 가득 찬 이십대 마도로스다. 항구를 돌아서면 남포동이 그리워 등대불 바라보며 아-휘파람 분다" 가수 백야성은 본명이 문석준이며 1934년 서울 종로구 방산동 출신이다. 고등학교 3학년 학기말 무렵 공군에 입대해 3년 6개월의 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 노래자랑이 있는 곳이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휩쓸고 다니며 끼를 발산했다.
1958년 백야성의 소문을 전해들은 오아시스 레코드사 사장 손진석에게 발탁되어 노래 `마음의 이별'로 데뷔했다. 1960년 우리 부산의 서구 아미동 소재에 있던 도미노 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 `마도로스 부기'가 대히트해 가요계의 정상에 서게 되었다.
이후 1961년에는 우리 부산 시민이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불러본 노래 `잘 있거라 부산항'이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마도로스 업계에 일대선풍을 몰고 왔다. 1962년에는 `마도로스 도돔바' `항구의 영번지' `마도로스 사랑' 등의 노래를 발표해 이 시기는 그야말로 백야성의 시대였다. 가수 백야성 그의 이국적인 마스크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목소리는 아무리 장구한 세월이 흘러도 우리 부산 시민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