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개 시인의 국제시장 이야기 2

해방과 동시에 생긴 국제시장이라 규모에 비해 시설은 미비할 것은 뻔 한 일이다. 더구나 혼란기였고 기자재도 태부족한 상태였다. 비단 시장 뿐 아니었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국제시장'이란 이름은 1950년 5월 정식으로 사용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유엔군의 상륙과 피난민의 유입으로 부산의 거리는 무질서와 혼란이 가중되었다. 외래품이 설치고 밀수품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가짜까지 한몫 거들었다. 군수물자까지 거래되었다. 90년도 초반까지만 해도 통용되는 말이 있었다.
"뭐든 다 있소, 처녀 불알만 구해달란 소린 하지 마소."
이 말은 존재하는 물건이라면 다 구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모든 생필품을 비롯해서 군수품, 기계를 비롯한 기계부품, 전기기계와 부속품, 건축 기자재 등 모든 면에서 국제시장은 훌륭히 소화해내었다. 어쩌면 남한의 동맥을 이어주고 산업시설에 물자를 제공했다면 지나친 말일까. 가령 생산 공장의 기계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려면 부속품을 갈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구할 수가 없다. 가령 미국이라면 몇 달이 걸리게 되고 일본만 하더라도 한두 달은 보통이었다. 자연히 국제시장으로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여기서 대체품으로 개발해 만들어 쓰기도 하였으나 품질보장은 아예 기대 밖의 일이었다. 요행히 맞는 부속품을 찾았다면 천만다행이었으니까.
그런 국제시장이 규모가 커서 그런지 불과도 인연이 깊다. 아니 부산이 불과 너무 인연이 깊었다. 그래서 부산을 불산이라 해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가마 부(釜)자 때문이라고도 했다. 불이 그것도 큰 불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부쳐진 별명이다.
어쨌거나 사람이 끓는 곳엔 화재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국제시장 같이 밀집되고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라면 소방시설 자체가 미비하거나 노후화된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좁은 공간에 소방차가 들어 갈 곳도 없다면 신속히 진화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피해는 늘기 마련이다.
이젠 불명예스런 오명은 벗어 던지자.
시설의 근대화를 통한 유통망 구축이 필요하고 주차난 해결도 시급하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으면 해결점도 있기 마련이니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될 것이다.
현재 국제시장 가까이에 `먹자골목'과 `약방골목', `깡통골목'이 있어 더욱 붐비는 요인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