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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근대 선각자 박기종 선생을 아시나요?
  • 489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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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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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4일 개관한 박기종기념관을 찾았다.  박기종기념관은 중구 관내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연계로 전국 최초의 주민복지형 모노레일 3층 정류소 디지털고등학교 옆 망양로 363(영주동)에 위치해 있다. 3층 건물로 1층 커뮤니티 공간, 2∼3층은 기념관으로 박기종 선생의 약력과 활약상, 부산 변천사, 부산항 변천사, 중구 기억의 시간들로 구성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박기종 선생은 2005년 부산시에서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인물 중 한 분으로 선정된 부산을 대표하는 선각자이자 철도왕이며 개성학교 설립자이다. 그는 1839년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가난한 상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일찍부터 상업에 뛰어들어 지금의 중앙동 앞바다에서 `논치어장'을 경영하고 초량왜관 시절(1678∼1872) `동래 팔상고'(왜관무역지정상인)를 드나들며 한국상인과 일본상인들의 거간 일을 맡아 했다. 능숙한 일본어 실력 덕에 젊은 나이에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고, 개항당시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일본어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박기종 선생은 두 번의 일본 방문을 통해 신문명의 감명을 받고 철도, 해운, 교육을 통해 조선이 근대산업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확신과 앞선 안목을 갖고 물류수송의 혁신과 근대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해 1889년 기선회사를 설립하여 해운업에 진출했다. 1895년에는 부산상무소를 설립했고, 부산 최초의 신식학교 개성학교를 설립하고 1896년 3월 1일에 약 100명의 학생이 영주동 교사에서 수업을 시작하게 되어 1898년에 제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했다. 개성학교는 110년이 지난 지금도 개성고등학교(옛 부산상업고등학교)로 남아있다.  1898년 외무부 참사관 시절 박기종 선생의 소원인 철도건설에 주력하며 부하철도회사 설립을 인가받았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철도회사 창설이었다. 선생은 1899년 대한철도회사를 설립하고 경원선, 함경선의 부설 허가를 얻어 건설사업을 계속하려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국내 철도부설권이 일본에 의해 독점 되는 것을 막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1902년 심마철도 부설을 계획하고 영남지선 철도회사를 설립하지만 몇 개월 후 부설권이 일본으로 매도되고 말았다. 박기종 선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끈질긴 노력과 도전정신을 배워 앞으로의 더욱 발전된 모습과 부강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도록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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