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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의 뜨락 - 새해, 책이 만들어준 소녀 ( 580호 )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어 시어머니와 함께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다니는 수영장에서 우리 시어머니 별명은 `나(이) 많은 소녀'이다. 이 별명은 나로 인해 만들어진 것인데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시어머니께 새해 선물이라며 큰 글씨 시집을 선물로 드렸다. 좋아하시는 기색 없이 옆으로 치워져 있었던 시집! 2∼3주가 지났을 무렵 시어머니께 전화 한 통이 왔다. "야! 내가 니 그때 책 사준 기 골칫덩어리였는데, 내가 수영장에서 소녀가 되었다. 소녀가! 하하하" 그 말인즉슨 시어머니 수영장 가방에 내가 사드린 책이 있었고, 혹여 책이 젖을까 봐 꺼내 물기를 털고 있었는데, 수영장 지인들이 무슨 책 읽냐고 "아직 소녀 같네∼. 책 다 읽으면 빌려도! 말순이 소녀다 소녀! 나(이) 많은 소녀!" 하고 책 읽는 어머니를 칭찬하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큰 글자 책이라서 읽기도 수월하고, 시집이라서 금방 읽힌다고 고상한 흉내를 내셨단다. 시집을 다 읽고 수영장 지인에게 빌려주셨단다. 그리고 소녀가 되셨다.
어머니는 "진정 소녀가 되기 위해 서점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큰 글씨 책 있어요? 긴 거 말고 그냥 시집이면 돼요" 하고 서점 주인에게 고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점 주인이 몇 권의 책을 소개해 줬고, 큰 글씨 책이 많이 없어서 주문해 드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두 권이 세 권이 되며 점점 늘어갔다. 그 사이에 할머니집을 가면 핸드폰, 티비 마음껏 보던 우리 아이들도 할머니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보이며 할머니 책들을 한 권씩 따라 읽기 시작했다. 새해에 선물한 책 한 권이 시어머니의 수영장 지인들과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
시어머니는 예전에 아들이 학생 때 책을 산다고 돈 받아가서 딸랑 두 권만 사 오고 나머지는 자기 용돈을 했는데, 그걸 알면서도 매번 책 산다고 하면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더라며 그 책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 당시 어머니에게 책은 그런 힘을 가졌던 것이다. 지금도 책은 어머니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비밀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내가 책을 읽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내를 보는 게 달라지더라! 억지로 한 권 읽으니까 뿌듯하더라! 수영장 여자들이 내한테 소녀라고 하는 게 좋아서 계속 읽게 된다니까! 보수동 책방골목 가면 니가 말한 그 책냄새 나도 좋더라! 그리고 느그 애들 왔을 때 내가 책만 봤는 줄 아나? 애들 몰래 책 사이에 휴대폰 끼워서 잠시 카톡도 봤다. 하하하"라며 웃음꽃을 피웠다.

최혜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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