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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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안희제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한눈에 보다 ( 562호 )
이달의 문화시설 - 백산기념관
백산기념관〈사진〉은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8월 15일 개관했다.
1층 상설전시실 입구에서 백산 안희제 선생의 흉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전시실에는 백산 선생의 출생과 성장, 교육구국운동, 국내 비밀결사단체 활동, 백산상회의 설립과 운영, 언론·학회활동 등의 기록이 담겨 있다. 또 백산 선생의 일대기를 표현한 샌드아트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사무실 앞에는 백산 선생 장식 접시를 비롯한 8종의 기념품이 마련돼 있어, 방문 관람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지하 1층은 기획전시실 공간으로 대관을 희망하는 문화예술단체는 전화(600-4067)나 온라인(중구 통합예약시스템)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한편 8월 1일부터 6일까지 백산 안희제 선생 순국 8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8월 3일 오후 6시 백산기념관 앞마당에서 극단해풍의 `진심문화제'가 열리고, 8월 5일 오후 7시 용두산공원 야외특설무대에서 헌정음악회 그랜드 칸타타 `백산'이 선보인다.
- 새책 - 토끼 화장실 ( 5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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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도손 바다영화관 열렸다 ( 562호 )
중구는 7월 15일과 16일 유라리광장과 모퉁이극장에서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의 `오손도손 바다영화관'을 열어 참여 어린이와 청소년 가족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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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 혼밥 그리고 편지 ( 562호 )
학창시절 읽은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1950)' 책 속에 나오는 `군중 속의 고독' 이란 말이 한 번씩 떠오르곤 한다. 우리들은 그만큼 복잡한 사회를 지금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타면 10명 중 8∼9명은 휴대폰을 잡고 있는 모습은 낯선 광경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복잡다양해져가고 빈부의 차도 심해지는 세태에 우리는 어쩌면 그 틈 속에서 무서운 고독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1인 가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그에 맞춘 혼밥형 먹거리까지 많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세월에 따른 문화적 변화일수도 있으나 혼자서 밥과 술을 먹는 것은 자폐적(?) 상황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탈무드'에서 사회적 기부활동이나 나를 떠난 `우리'의 개념이 한 번씩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가까운 사람에게 직접 쓴 편지를 주고 싶다. 가까운 지인과 맛있는 빈대떡과 막걸리 한 종바리를 먹고 싶다.
나무만 듬성듬성 있는 산보다는 꽉 차 있는 숲이 보고 싶다. 둥지에서 짹짹거리며 먹이 주는 어미 새를 기다리는 아기 새들도 혼밥은 안 먹겠지? ㅎㅎ
우리는 인간이고 어차피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직접 쓴 편지와 빈대떡과 막걸리 한 종바리가 생각나는 밤이다.

최 대 호
가수, 방송인, 수필가
주간신문 QTime 편집이사 역임
부산중구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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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장 50년. 내 인장에 혼을 새겼다 ( 562호 )
주경업의 중구이야기 113 - 예술인장연구소 해인당 정천식 명인
인장역사 단군고사서 비롯
재료 다양, 나무가 `제일'인터넷으로 이름 석 자만 넣어주면 도장 하나가 뚝딱 배달되는 시대에 "도장 새기는 일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 신분증을 만드는 일"이라며 "의뢰인과 충분히 공감한 뒤 심성(心性)을 다해 만들어야 비로소 정확한 분신(分身)이 탄생할 수 있다"고 인장 장인의 직업윤리와 가치를 콕 집어서 강조하는 정천식(鄭千植·1950) 명인을 만났다. 중앙동 주민센터 동쪽 큰길가 모퉁이, 중앙대로 39-1(중앙동 6가 20)의 아주 조그마한 도장집을 찾았다. 폭 1.5미터 정도, 점포 길이 80여 미터되는 좁고 긴 가게 밖엔 `예술인장연구소 해인당(海印堂)'이란 간판이 걸려있고 실내 좁은 벽 앞뒤로 인장 자료들이 선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좁은 가게는 다시 정 명인이 인장을 연구하고 새기는 공간과 서각(書刻) 작업하는 공간 등 두 개로 구분되었다.
금년 1월 대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하여 회복단계였지만, 평생 몸 바쳐 일해 온 인장 이야기엔 두 눈이 반짝이고 말에 힘이 실린다. "노후에 이런 좋은 직업 가진 것에 행복하지예. 인장 새기는 일은 예(藝)로 향하는 무궁무진한 발길이어서 항상 나를 깨우치며 정진하지예. 그냥 파고 새기는 건 혼이 없는 행위일 뿐이지요" 정 장인이 새길 도장(인장)의 인장 할 인면을 사포로 다듬고, 인상(印床, 조각대)에 끼워 단단히 고정 시킨 후 인면에 주사(朱砂)를 칠한다. 그리고 자전(字典) 등에서 사포로 새길 글자를 찾아 그림 그리듯 디자인한다. 의뢰인의 이름을 감정하여 성명학에 의해 印·信·章(인·신·장)에 근거하여 부족하면 획수를 채우면서 `흉'에 해당하는 획을 쓰지 않고 `길'에 해당되는 글자를 찾아 쓴다. `홍길동인' 넉 자가 따로 보이지 않고 한 그림처럼 보여야 한다. 글자의 크기나 획의 각도에 따라 필요한 칼(조각도)을 선택하여 새기기 시작한다. 이마에 내 천(川) 자가 그려지고 눈초리가 날카롭게 빛난다. 칼 잡은 손가락에 힘이 실린다. 붓에도 중봉(中峯)과 측봉(側峯)이 있듯 이 칼에도 칼 쓰는 법에 따라 중봉이 있고, 측봉이 있다. 도법(刀法)에는 칼을 잡은 집도(執刀)와 칼을 움직여 나가는 운도(運刀)가 있어서 글씨에 따라 새기는 법을 달리해야 한다. 1차 조각 후 붓으로 나뭇가루를 털고 다시 2차 3차 조각을 하여 완성한다. "그냥 깎아서 만들면 뚝딱 할 수 있지만, 그걸 2∼3일씩 집중해 새기면 그만큼 심성이 도장 속에 스며들지요" 정 명인이 쓰는 조각도(1∼5호)는 인상과 함께 50여 년 더께가 묻어 낡고 보잘것없어 보이나 장인은 이를 소중히 여기며 애중한다.
그림 옆에 찍는 도장을 낙관(落款)이라 하고, 이름 옆에 찍는 것을 인장이라 한다. 그러므로 땅 사서 등록하는 문서에 사용하는 인장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명인은 스스로를 인장 연구가로 호칭한다. 그래서 가게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인장의 역사는 오래되어 일찍이 환인(桓因)이 그 아들 환웅(桓雄)에게 천하를 다스리고 인간세상(人世)을 구하게 함에 있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보냈다는 「단군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권 p524. 한국정신문화연구소) 명인이 인장에 관심 가진 것은 중학교 1년 때부터란다. 초등학교 졸업 때 저축했던 저금을 찾기 위해 담임이 마련해준 도장이 신기하여 손재주가 좋았던 고향(거제시 장승포아주) 형을 따라다니며 배우면서 재미를 붙인 것이 어른이 되어 천직이 되었다. 중학교 졸업 후 제대하고 서울 조카네에 가서 한복에 금박 입히는 일을 배운다. 역시 인장 작업의 연속이었고 부산 서면으로 옮겨와 도장방을 내었다가 도장기능사자격증(1981년)을 획득한 후 중앙동에 정착하면서 `해인당'이라 이름했다. 좋은 글씨를 배우기 위해 20여 년 전부터 중부경찰서 옆의 허홍서실에 나가 예·전·해서 등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가게와 집에서도 항상 지필묵을 곁에 두고 서체를 연구해왔다. 28살 때부터 시작한 도장 일이 어느덧 50년 세월이 되었다. 그는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의뢰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출근한다. 그리고 붙박이듯 조각대 앞에 앉았다. 인장에 쓰는 재료로 금·은·동·옥·수정·상아 등의 금속과 광물 등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재료는 나무이다. 회양목이 단단하고 거칠지 않아 도장 파기에 좋으나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도장으로 만들면 복이 든다고 해서 인기다. 나무는 자연 그대로 만든 무늬가 제일 멋스럽다. 뒤틀린 나무도 뒤틀린 대로 멋지다. 정 명인은 의뢰 맡은 인장 옆면에 의뢰인을 위하여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같은 좌우명을 측관으로 새겨준다.
명인이 나뭇잎, 옴자, 기타 그림 문자 등으로 디자인하여 만든 맞춤인장은 의뢰인들에게 인기 상승이다. 한때 100원짜리 나무 도장을 하루에 1∼200개 만든 적도 있지만 결코 예술인장이라 할 수 없는 생계용이었지만, 각기 이름에 알맞은 살아있는 재료를 선택하여 새겨야 좋은 인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불어닥친 불황이 이곳인들 비켜 갔겠느냐만 명인은 오늘 아침도 동대신동 자택에서부터 중앙동 작업실까지 걸어 출근하며 에너지를 축적하고 하루의 설계를 계획한다.
문의:부산民문화원 255-5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