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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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자락 ( 523호 )
툇 마 루
이희철
밥상이 마당으로 날아가도
웅크려 툇마루만 닦으셨다
툇마루는 옹이의 세월을 붙들고 있었다
눈물은 사금파리처럼 파랬다
내 마음의 한 평 때 절어 어두울 때
그때마다 어머니 먼저 들어와 계시다
나무가 되시려고 그러셨나
수국이 피어도 아무 말도 없으시다
중년의 나이에 `우리의 어머니'들을 새삼 떠올려보면, 신산했던 시대 속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왔음을 알 수가 있다. 봉건적 사회체제하에서 `여성'이라는 성(性)은 마냥 참고, 견디고, 희생해야만 하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
나무에 아프게 박힌 `옹이'처럼, 당신들 세월 속 마디마디에도 수많은 옹이가 켜켜 배여 있을 터이다. `밥상이 마당으로 날아가도' 이를 치우고, 다시 차려내는 비상식의 일상. 이를 가족을 위한 업으로 알고 달게 살아온 이가 우리의 어머니들이다.
자신을 닮은 툇마루의 옹이를 닦으며 사금파리 같이 시퍼런 눈물을 훔치면서도, 자식의 한 평 마음 속 그늘 안에는 먼저 들어와 다독이신다. 그리하여 큰 꽃 피우고 큰 그늘 만드는 이, 나무 같은 이가 우리의 어머니들이다.
최원준 시인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00년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 시 부문 선정. 시집 `물방울에 길을 묻다'. `시 작업 이후'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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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업의 중구이야기 75 ( 523호 )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와 영도다리
근현대의 역사를 품고 묵묵히 들고 내리는 영도다리
1934년 11월 준공한 도개교
2013년 재개통해 부산명물로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메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흘로 왔다(강해인 작시, 박시춘 곡, 현인 노래).
남포동에서 영도다리를 건너면 오른쪽 건물 모퉁이에 한 때 인기절정이었던 가수 현인의 동상과 피란시절의 애환을 그린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서있다. 초생달만 외로이 떠 있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서도,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심어 삶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기도 했던 〈굳세어라 금순아〉. 턱을 떠는 듯 탁탁 끊기는 특이한 창법, 그 절제미가 오히려 슬픔을 더해주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불러오는 이 노래의 노래비는 가로 세로 4×3미터로 바다와 항구가 어우러진 배의 모습과 음표, 갈매기가 형상화 돼 있다.
현인(본명 현동주, 1919∼2002)은 영도구 영선동 183번지에 출생했으니 부산사람이다. 구포보통공립학교에 입학해 3학년 때 영주소학교로 전학한 뒤 다시 5학년 때 부친과 함께 상경해 1978년 경성 제 3고보(경복고의 전신)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우에노음악학교에서 성악과 클라리넷을 전공했다. 1952년 음악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지만 원했던 대학의 음악교수 자리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성보악극단에서 음악을 지도하다가 대동아 전쟁말기 일제의 징용을 피해 악극단 `신태양'을 결성하고 중국으로 건너간다. 해방 후(1946) 귀국해 악단 `19번가'를 조직해 활동하던 현인이 이듬해 작곡가 박시춘을 만나면서 대중가수로 변신한다.
당시 명동 명치좌(이후 시공관)에서 영화 〈자유부인〉을 상영하던 때, 28세의 현인은 무대에서 〈신라의 달밤〉을 열창했다. 고음으로 올라가면 목청을 심하게 떠는 바이브레이션이 관객들을 흥분시켰다. 앙코르를 연발해 그 자리에서 〈신라의 달밤〉을 9번이나 부른 일화는 대중 가요사에서 유명하다(박찬호의 돻한국 가요사2돽, 2009, p39∼41). 노래를 작곡한 박시춘이 이 노래를 소화시킬 수 있는 가수를 찾던 중 상하이에서 돌아온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현인이 발탁돼 악보를 받아들고 즉석에서 리듬으로 노래 부르고 이틀 뒤 특별출연을 해 대히트한 것이다.
호방한 성격에 서구형 미남인 현인은 이를 계기로 〈비나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럭키서울〉 등을 불러 잇달아 히트시키며 유호-박시춘-현인 트리오시대를 열기도 했다. 6·25 전쟁 때 일선장병을 위문공연 갔다가 타고 가던 차가 굴러 허리를 크게 다친 현인은 그 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바로 서서 부르지 못하고 피아노에 기댄다든지, 곧잘 의자에 앉아 노래를 해야 했고, 이로 인해 건방져 보인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한국 가요사에서 독특한 바이브레이션과 스타카토 창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만의 창법은 `해방전 남인수' `해방후 현인'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예나 지금이나 다리는 우리 주변에 많이 놓여 있다. 하천이나 계곡을 가로질러 놓은 다리는 서로의 왕래를 편하게 했고 교통의 발달을 가져왔다. 폴짝폴짝 뛰어 넘는다고 징검다리, 혼자만 건널 수 있다고 외나무다리, 긴 물길엔 나무기둥을 엇대고 그 위에 나뭇가지 걸치고 흙까지 덮어서 편하게 다니는 살래다리도 놓았다. 보길도 세연정에는 굴뚝다리를 놓아 그 위로 물이 흘러 떨어지면 폭포와 같은 효과를 얻기도 했다. 부산에도 보수동의 검정다리, 동래의 세병교 등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다리가 더러 있었지만 현대화의 물결 속에 흔적도 없이 감추어 버린 지 오래됐다. 그러나 부산 남항과 영도를 잇는 영도다리는 근대사를 지켜본 산 증인으로 버티고 앉아 있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주변의 다리들과 함께 고전-현대미를 멋지게 조화시키고 있다.
1932년 3월 8일 착공해 1934년 11월 23일 준공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連陸橋)인 영도다리는 가설되기 전부터 말도 많았다. 가뜩이나 굽은 물길에 다리를 놓으면 큰 배가 지나가지 못할뿐더러 큰 배들이 영도를 돌아 북항으로 입항하자면 소요시간과 운항 경비가 수월찮게 든다느니 하면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뜻밖의 해결책이 나와 다릿발 사이의 일부분을 전동기로 들어 올려 선박출입을 돕는 이른바 도개교를 놓자는, 당시로는 기상천외의 방법이 나타나 일본인 설계자의 도개식 방법으로 영도다리를 가설하게 된다. 영도다리에 전찻길이 놓이고 상수도관이 부설되는 등으로 한 때 도개기능이 폐쇄되기도 했으나 2013년 다리 폭을 넓히고 다시 일정한 시간(오후 2시)에 들어 올리는 등 새롭게 만든 영도다리(영도대교)가 하늘을 향해 다릿발을 번쩍 들어 올려 부산 관광의 한 몫을 하고 있다.
문의:부산민학회 255-5424 - 보수동 책방골목 서점을 소개합니다 ( 5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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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동 빈집 청년마을 놀이터로 ( 523호 )
영주동 빈집이 리모델링을 통해 5월부터 청년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인 `청년마을놀이터'로 변모한다.
부산시는 2022년까지 총 5곳의 청년마을놀이터를 조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첫 시행지로 중구 영주동에 있는 빈 공간을 임대해 리모델링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4월 24일까지 입주 청년단체를 모집했다. 입주 청년단체는 공간 임대료 없이 해당 공간에 머물며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다. 참여예술가 네트워킹과 역량 강화 워크숍에 참여할 기회도 제공된다. 이와 함께 주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자율 프로젝트를 운영해 예술인과 주민, 주민과 주민이 함께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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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따 100인의 부산 아빠단 4기 모집 ( 523호 )
부산시는 4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 육아하는 아빠들의 모임인 `와따 100인의 부산 아빠단 4기'를 모집한다.
아빠단은 4∼7세 자녀를 둔 아빠들을 대상으로 모집한다. 신청은 부산시 홈페이지와 부산아이 다가치키움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신청 사연 등을 바탕으로 선발된 100인의 명단은 5월 12일 부산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문의:부산시 운영사무국 638-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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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시인 ( 523호 )
나를 꽃피우는 글쓰기 교실(4)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몸·마음으로 체득한 세계
매우 독창적이고 유일무이
내 경험, 신념을 믿어야
글쓰기는 신록이 초록을 틔우는 일과 같다. 자연스럽고 힘이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다는 건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두려움을 버리면 자신감은 저절로 얻어진다. 자신을 긍정하고 친구와 이야기 나누듯 가볍게 시작해 보자. 글의 기교를 떠나 내 안에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무엇'을 발견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다운 `나'는 어떤 것인가. 내가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세계는 매우 독창적이고 유일무이한 것이다. 나 한 사람의 경험은 고유한 것으로, 나 같은 모습으로 나 같은 환경에서 성장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전 지구적으로 내 삶이 소중한 이유이다. 글쓰기는 자신을 믿고 스스로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는 작업이다.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진실의 표현이다. 자기다운 목소리야말로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일상에서 `나'를 꽃피우는 방식이다. 나의 모습, 나의 하루, 나의 가족과 사건들 모두 특별하다. 동시에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모든 순간은 필연이고, 내가 창조할 수 있는 의미의 영역이다. 일상은 우주의 신비로운 의미로 가득하다. 주변을 자세히 보고 틈틈이 사유하며 존재의 힘에 접근해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나의 경험, 나만의 신념을 믿어야 글을 쓸 수 있다. 괜한 자격지심으로 나를 불신하거나 쓸데없이 주눅들 필요가 없다. 조금 가난해도, 조금 못나도, 조금 연약해도 내 삶은 이 지상에서 유일한 세계이다. 그래서 자긍심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한 것이 진리이고, 내가 생각한 것이 이 시대가 요청하는 것들이다. 글쓰기는 내 자신에게 대답하고 내 이웃에게 대답하고 우주에게 대답하는 것이다. 그 대답이 일상적인 얽매임을 벗어나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존의 지평을 열어간다.
다시 말하건대,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 내 생각이 답이다. 이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쓰면 새로운, 나다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를 믿어야 한다. 자신감은 자만심과는 다르다. 자신감은 남을 배려하면서 나오는 힘이고, 자만심은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세이다. 나를 믿는다는 것은 내 안에 사랑이 충분하다는 의미이다.
*이달 주제:내가 가고 싶은 장소
(주제와 소제는 자유)
A4용지 한 장 분량(글씨 10호)을 써서 보내주신다면 2명을 선정, 소정의 도서를 보내드립니다.
보낼곳:soowoo5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