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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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기는 공간 ( 498호 )
문화공간 산책-밀다원시대
북카페서 커피 한 잔의 여유
노인일자리 지원센터 운영
꽃샘바람이 기승을 부리던 3월 7일 중구 망양로에 있는 밀다원시대를 찾았다. 주변에 거리 갤러리가 꾸며져 있어 중앙공원으로 가는 골목길이 즐거웠다.
이곳은 6·25전쟁 당시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던 광복동 밀다원다방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문화소통공간이다. 현재 북카페와 함께 노인일자리 지원센터가 들어서 있다.
입구부터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부산 앞바다의 전망과 적절히 배치된 도서들로 북카페의 분위기가 한층 더 세련되게 느껴졌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0원, 카푸치노 2000원, 유자차는 1000원으로 좋은 음료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수제로 만든 쿠키 맛도 일품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맛있는 팥빙수가 더위를 날려준다.
카페에 마련되어 있는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 나이 많은 부부가 카페 한 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확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차를 즐기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유쾌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중앙공원을 산책하다 내려와서 차를 마시는 사람도 종종 있다. 공원과 연결된 오솔길이 운치 있다.
바리스타로 일하는 영주1동 이희자(가명·67) 씨는 "카페를 찾는 손님들과 소통할 수 있어 하루하루가 즐겁다"며 "이 나이에도 자식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직접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당당해지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2회, 하루 3시간 30분씩 2인 1조로 10명이 돌아가면서 카페 근무를 하고 있다. 그녀는 "카페를 찾은 손님들 중에는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런 분들에게는 중구노인복지관에 신청해서 순서를 기다리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귀뜸해 주었다.
밀다원시대 1층에는 노인일자리 지원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최영미(60) 사회복지사는 "65세 이상 노령연금을 받으시는 분이면 해피 실버강사, 보육교사 도우미, 중구역사와 문화통역단, 사서도우미, 복지시설 도우미 등 다양한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자리는 매년 1월 모집하지만 수시 접수도 가능하며 등본과 통장사본을 지참해서 전화(461-0307) 문의 후 직접 방문 접수해야 한다.
최애숙 명예기자
- 이달의 추천도서 ( 4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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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자락 ( 498호 )
호 명
강영환
불러야 할 이름들이 생각나질 않았다
갑자기 `어이'라는 소리 밖에는
그 얼굴에 합당한 기호가 그려지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는 뒤가 멀어졌다
불현 듯 뒤를 남기고 멀어져 가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말았을 때 내게 남은 이름도
구멍 난 양말처럼 길섶에 버려져야 했다
경남 산청 출생.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칼잠', `산복도로', `울 밖 낮은 기침소리' 등 다수. 시조집 `북창', `남해' 등.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회 초대회장 역임, `이주홍문학상', `부산작가상' 수상.
갑자기 사람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살면서 그렇게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았던 것일까? 아니면 수많은 기억들이 생겨나고 잊히는 가운데, 필요 없는 기억으로 분류, 삭제된 기억들일까? 그런 기억의 이름이 현실 속에서 불쑥 나타나면, 그 기억의 합당한 이름을 미처 불러내지 못할 때가 있다. 서로가 참으로 황망한 일이다. 그리고 `어이'라는 소리로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 기억과의 관계는 뒤를 남기고 멀어져 가는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그런 무수한 관계들이 구멍 난 양말처럼 속절없이 길섶에 버려지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최원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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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양식의 자유로운 선택시대 7080 ( 498호 )
주경업의 중구이야기 50 광포동7080 '8' 서양화(하)
70년대 미술동인 많이 창립된 시기
70년 중반 현대·중앙·광복화랑 등
80년대 전시전문화랑 개관 전문화
81년 〈제1회 부산미술제〉 미술축제
1962년이면 (사)한국미술협회가 중앙에 결성되면서, 부산에서도 부산미협을 해산하고 지부결성을 한다. 그러나 한편 회원자격을 얻지 못한 작가들의 불만도 커진다. 1963년 1월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부산시공보관이 개관된다. 65년도 부산미협 주관으로 `국전'에 대비되는 〈대한민국국민미술전〉(줄여서`민전')이 7월 10일부터 15일 동안 동아대학교 공과대학에서 개최된다. 이 해 8월 15일엔 미협회장단을 불신임하던 회원들이 따로 모여 〈8·15경축 65년 부산미술가 작품전〉을 미공보원에서 열어, 부산미협은 큰 분열위기에 부딪히며 미술을 사랑하는 다수 시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 활동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회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 해방 후 69년도까지 24년간 부산에서 열린 미술전시회가 606회인데 비해 70년 10년 간의 전시회수가 1493회로 증가한 것만 봐도 그렇다. 미술인구가 증대하고 그들의 작품발표 기회가 많아지면서 창작의욕이 커진 증거이리라. 미협 부산지부가 개최한 합동전만도 〈3·1절 기념전〉 〈8·15경축미전〉 〈건국10주년미전〉 〈부산미협전〉 〈안데팡당전〉 〈부산문화회관 기념전〉 〈부산미술대전〉 등에서는 화가와 화가지망생의 등용과정을 열어주고 있었다. 〈길동인〉과 〈혁동인〉이 63년에 각각 창립되었고, 조각동인 〈공간〉도 69년에 창립됐다.
70년대는 미술동인이 많이 창립된 시기였다. 부산판화회(73), 육월회, 동맥회, 凹凸판화회(74), 여류7인회, ㅁ·ㅂ·ㄹ, WORK(75), 토백회(76), 맥, 3월회, 하상회, 포인트, 부산창작가회(78), 부산수채화회(79) 등이 새로운 이념으로 발전한 동인으로 모였다. 한편 화랑중심이던 전시공간도 70년 중반에 이르면 현대화랑, 중앙화랑, 명인화랑, 한관미술관, 광복화랑, 부산탑미술관, 수로화랑, 공간화랑, 원화랑, 부산호텔전시실, 목마화랑, 로타리화랑, 국제화랑, 아리랑화랑, 방건화랑, 진화랑 등이, 80년에 이르면 동방화랑, 선화랑, 한성화랑, 한일화랑, 유화랑, 맥화랑, 사인화랑, 누보화랑 등의 전시전문화랑이 다투어 문을 열면서 작가들의 작품발표 기회가 많아졌고 전시와 기획 등이 전문화 되어갔다.
점진적으로 전시회의 분위기가 발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인식되어가고 있는 증거였다. 이 시기 괄목할 것은 〈부산미술전람회〉가 부산시가 주관하고 예총부산지부가 주관하여 1975년 11월 3일부터 시민회관 1, 2층 전층에서 제1부 동양화구상, 서양화구상, 회화비구상, 조각, 판화, 서예, 공예, 제2부 사진, 제3부 건축으로 나뉘어 개최된 것이다.
81년 〈제1회 부산미술제〉가 개최되므로 미협회원과 비회원을 망라한 부산미술의 축제 마당이 되었고 이는 전국에서 유일한 행사로 주목받아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다. 이 해 미술강연회도 열리고, 부산작가 41명과 외래작가 43명의 〈제1회 부산비엔날레〉도 개최됐다. 85년에는 계간 『부산미술』지가 출간되기도 했다. 특히 87년은 부산미술계의 기성작가들과 신예작가들 모두의 작품활동이 왕성한 시기여서, 시내 각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수가 340여 회에 이르렀다. 작품경향과 흐름에 있어서도 표현양식의 자유로운 선택이 두드러졌고 설치작업이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잇단 화랑의 개관이 상업성에 치우쳐 본래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는 핀잔도 들어왔다. 소장자들이 대가급 작품만 찾는다고, 이에 영합하여 서울 등 타지작가 초대를 우선하다 보니 부산화단의 신인작가 발굴을 외면하는 등 부산미술의 특성과 잠재력 신장을 등한시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특히 70, 80년대는 중·고 미술교사가 화단의 주류가 되어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른바 전업미술가 보다 교사미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때였다.
문의 ▶부산민학회 255-5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