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사랑방
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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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두산 씨 24 ( 463호 ) 용두산 씨 24
- 동·네·이·야·기 ( 463호 ) 동광 희망나눔 텃밭 가꾼다 동광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회장 김진배)와 동광동 새마을부녀회(회장 이정숙)는 3월 23일 `동광 희망나눔 텃밭' 확대운영을 위해 감자와 상추 등을 파종했다. 마을공동체 텃밭 운영으로 공동체 의식 함양과 소통,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친환경 농작물을 저소득층에 나누어주는 이웃사랑을 실천할 계획이다. 동광청결지킴이 발대 동광청결지킴이 발대식을 3월 30일 복병산 배수지 체육공원에서 가졌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그린마을 조성을 위한 발대식에 주민자치위원회 등 자생단체원 60여 명이 참석했다. 동광청결지킴이는 `우리 마을은 우리의 손으로 깨끗이 한다'라는 사명감으로 권역별로 청결활동을 하였다. 광복동 주민자치회 대마도 체험수업 광복동 주민자치회 일본어교실은 4월 9일 타카하시 카즈키 원어민선생과 수강생 10여 명이 일본 대마도를 방문하여 현지 체험수업을 했다. 슈젠지, 반쇼인, 조선통신사비, 고려문, 하치만구 신사 방문을 통해 일본문화에 대해 배워 일본어 학습 의욕을 높이는 등 수강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사·랑·나·눔 ( 463호 ) BNK부산은행 재봉기 전달 BNK부산은행은 3월 27일 중구청을 방문하여 산복도로 마을공동체 금수현의 음악살롱과 보수동 와글와글 사랑방에 공업용 재봉기 3대(390만 원 상당)를 전달했다. 중앙동 새마을부녀회 어르신 식사 대접 중앙동 새마을부녀회(회장 안영순)는 나눔봉사릴레이 사업의 일환으로 3월 27일 관내 저소득 어르신 20명을 초대하여 점심을 대접하고 안부를 물으며 건강을 확인하는 따뜻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제24회 동광장학회 장학금 전달 동광장학회(회장 이덕암)는 4월 9일 동 주민센터 회의실에서 제24회 동광장학회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고등학생 5명에게 각각 45만 원 씩 모두 225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동광장학회는 1992년부터 올해까지 24년간 244명의 학생들에게 7천2백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남포동 새마을지도자 어르신 중식대접 남포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회장 이준호)와 남포동 새마을부녀회(회장 배정열)는 4월 20일 경북대구횟집에서 관내 65세 이상 어르신 100여 명을 초대하여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 "부인, 고맙소! 앞으로 더 잘 할게요" ( 463호 ) 내가 만난 토박이-보수동 이 태 헌 씨 지난해 중구토박이로 선정된 보수동 사시는 이태헌(82세·사진 왼쪽) 어르신을 만났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 행복이 묻어나는 이태헌 어르신은 28세에 경남여고 출신 손윤자(75세·사진 오른쪽)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1녀를 두었다. 그는 "태어난 이후 줄곧 시내와 시장 가깝고 공기 좋은 부산 중구에 살고 있다"며 "보수동 대림아파트 주변이 일제강점기 때는 농장이었는데, 당시 선친께서 농장관리인으로 부임하면서 사하구 괴정에서 이사를 와서 나를 낳았다"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1960년 남부산세무서(충무동 로터리 소재, 지금은 사라지고 없음)에 7년간 근무했다. 재직 당시 청렴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정평이 나있던 그는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어서 고민 끝에 세무서를 그만두었다. 취미생활로 우표와 기념주화를 수집해 놓은 것을 밑천으로 기념주화와 우표를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처음 연 가게는 부산은행(부평동지점) 건너편에 있었다. 이후 자리를 옮겨 기독교백화점, 유나백화점, 부산백화점 등에서 영업을 계속했으며, 70세쯤 가게를 정리했다. 부부가 함께 즐거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이태헌 어르신은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장남이 대학 다니던 시절, 학교에서 과 수석 성적우수 장학금과 ROTC 장학금 중 선택하라는 전화가 왔을 때라며, 성적우수 장학금을 선택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5남매의 장남과 4자녀의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억척같이 30년 간 쉬지 않고 매점을 혼자 운영하며 집안일을 해온 부인의 도움이 매우 컸다"며 "고맙소, 앞으로 더 잘해줄게…"라며 수줍은 듯 말했다. 그가 태어난 집은 1968년 단층집으로 지었다가 1995년 다시 2층집으로 증축하여 지금껏 살고 있다. 그는 "부모가 잘못되면 자식이 고통 받는다"며 "절대 이혼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미자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