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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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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학생기자, 현장을 달린다 ( 507호 )
새로운 시작, 2019년
중구의 번화가, 광복동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축제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거리를 환하게 비추는 예쁜 조형물들과 그 중간을 지키고 있는 큰 트리는 매년 봐도 새롭다. 이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끝맺음이자 새로운 시작인 2019년 1월 1일 신정이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은 어떻게 2019년을 보내실 건가요?
신정은 태양력에 따른 설날로 전통적인 세시풍속인 음력설을 대체하기 위하여 실시된 명절이다. 우리나라의 양력 1월 1일이 설을 쇠는 양력설이 된 것은 1896년인데 음력설과 양력설이 오랜 시간 동안 갈등을 하다가 얻은 결과이다. 가까운 나라들 중 일본은 1872년부터 양력설을 쇠고 있고, 중국은 여전히 춘절이라는 음력설을 쇠고 있으며, 가까우면서 먼 북한은 양력에 따라서 설을 쇠다가 1989년 정무원의 결정으로 인해 음력설은 하루를 쉬고 양력설은 2일간 쉰다고 한다.
새로운 시작인만큼, 시작이 좋아야지 끝맺음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해 계획은 중요하다. 새해 목표는 사소한 것부터 정하고 지킬 수 있는 목표를 세워서 실천하게 되면 지난해보다 나아지고 발전한 새해가 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은 어떤 새해 계획을 세우실 건가요?
안현석 학생기자
행복을 배달하는 우체통
중구민 여러분!
행복을 배달하는 우체통을 알고 계시나요?
중구가 2014년 3월 구민들의 말 못할 고민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기 위해 11곳에 작은 우체통을 설치했다.
우체통 옆에는 작은 엽서가 있다. 엽서에 사연을 적어서 우체통에 넣으면 담당자가 1∼2주에 한 번씩 수거를 해서 중구청과 중구종합사회복지관이 함께 고민을 해결해 주고 결과를 본인에게 통보해준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많이 불고 한 해가 끝나가는 시기에는 주위에 소외되어 있거나 몸이 아프거나 힘든 일들을 겪는 분들을 기억하게 된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지만 잠깐 시간을 내서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구가 구민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행복을 배달하는 우체통'을 그냥 스쳐지나 가지 말고 이 기사를 통해서 널리 홍보가 되었으면 한다.
다가오는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얼마 남지 않은 2018년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중심! 중구 파이팅!! 조윤건 학생기자
부산 70번 버스의 비밀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70번(1251호) 버스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버스 내부에 환한 불이 밝혀진다. 그 이유는 70번 버스기사님이 버스 안을 조명과 크리스마스 트리장식으로 꾸며놓기 때문이다. 또 버스기사님은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운전을 한다. 버스를 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사탕도 준비되어 아이들에게도 인기 많은 버스라고 한다. 유아나 초등학생이 버스를 타면 선물을 주신다. 나도 8살 때, 그리고 지난해에도 70번 버스를 타서 자그마한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선물이 사탕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기분이 참 좋았었다.
70번 버스기사님은 버스 안을 꾸미고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운전하는 것이 힘드실 텐데도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꾸민다. 버스를 꾸미는 이유는 선물을 받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산의 명물 70번 버스! 많은 중구민들이 버스를 타서 사탕도 받고 즐거운 분위기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메리 크리스마스∼ 정유찬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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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중구예술인회 출범 ( 507호 )
주 경 업 중구예술인회 회장
부산 예술·문화 중심지 중구
중구 예술인 결집하여 제몫
중구문화예술 르네상스 표방
지난달 26일, `중구예술인회'가 출범하였습니다.
일본강점기는 제외하더라도 해방은 중구일원을 예술중심도시로 만들었지요. 옛 고을 동래를 건너뛰어 새로운 예술운동의 구심점이 되어갔습니다. 미술전시가 열리고 음악발표회, 연극공연들이 잇달아 열렸습니다. 새 사조(思潮)를 익힌 젊은 작가들의 향연이었습니다.
광복이 몰고 온 다방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다방은 단순히 차를 마시고 대담을 나누는 장소가 아닌 전시화랑이 되고 공연발표장이 되는 예술공간으로 자리 잡아갔습니다. 그것도 광복로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원도심 중앙동에 자리 잡아갔습니다. 6·25동란은 중구를 민족대이동과 더불어 예술운동하는 이들의 부산거점 활동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활동은 광복로를 중심으로 펼쳐졌고 사람들은 중구로 중구로 모여 들었습니다. 주말이면 문화와 예술을 즐기려는 시민들로 중구는 넘쳐났죠.
음악실에서 클래식을 팝을 듣고, 화랑에서 미술 감상하고, 그 감흥을 남포동 대폿집에서 풀었습니다. 적어도 90년 초까진 그랬습니다. 그러나 광복로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면서 그 많던 다방도 화랑도 문 닫고 떠났습니다. 예술인들도 제 살던 고을 중심으로 뭉치면서 중구의 예술문화 역할도 그 세를 줄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부산의 예술과 문화를 얘기할 때 중구가 그 중심에 있었노라고 서슴없이 얘기합니다. 이제야 중구에서 터를 일구고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의 구심점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늦은 감이 크지만(중구를 제외한 모든 구군에서 예술인 협의회가 구성되어있음), 40여 명의 중구예술인들이 결집하여 제몫을 다해야겠다 싶어 `중구예술인회'를 결성했습니다.
중구의 문화예술 지평을 얘기하고 문화예술활동을 펴면서 한창 때의 중구문화예술 르네상스시대를 표방해 보려합니다.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