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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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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에너지 절약 함께해요 ( 489호 ) 보수동 강혜련 5월부터 때 이른 더위로 봄이 실종된 지 오래됐다. 요 며칠은 갑작스런 여름 날씨에 한낮에 길을 걸으면 햇살이 따가워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30대인 나도 이런데 70∼80대의 어르신들은 이런 갑작스런 날씨 변화에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집 주변 원로의 집을 지나다 보니 `무더위 쉼터'라고 써 놓았다. 뭘 하는 곳인가 했더니, 어르신이나 어린이 등 노약자가 더위 때문에 힘들 때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고 지나가는 주민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노란 푯말이 붙어 있기는 한데 일반 주민들은 어떨 때 이용할 수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홍보를 더 많이 해 노약자들이 힘들 때 요긴하게 쉴 수 있었으면 한다. 가끔 동 주민센터를 이용할 기회가 있는데 보수동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이라 깔끔하게 민원실이 정비되어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하지만 지난 여름 동 주민센터를 찾았을 때는 더운 날씨에도 에어컨 설정온도가 27℃라 여간 더운 게 아니어서 힘들게 업무 보는 직원들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상점이 즐비한 광복로를 무더운 여름에 지나가면 상점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기침이 날 정도다. 고객들을 매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한 거라는 건 알겠지만 한쪽은 더워도 에어컨을 사용 못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 올 여름 우리 모두 에너지 절약 함께해 봐요!
- 기고 - 근대 선각자 박기종 선생을 아시나요? ( 489호 ) 문정수 명예기자 5월 24일 개관한 박기종기념관을 찾았다. 박기종기념관은 중구 관내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연계로 전국 최초의 주민복지형 모노레일 3층 정류소 디지털고등학교 옆 망양로 363(영주동)에 위치해 있다. 3층 건물로 1층 커뮤니티 공간, 2∼3층은 기념관으로 박기종 선생의 약력과 활약상, 부산 변천사, 부산항 변천사, 중구 기억의 시간들로 구성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박기종 선생은 2005년 부산시에서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인물 중 한 분으로 선정된 부산을 대표하는 선각자이자 철도왕이며 개성학교 설립자이다. 그는 1839년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가난한 상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일찍부터 상업에 뛰어들어 지금의 중앙동 앞바다에서 `논치어장'을 경영하고 초량왜관 시절(1678∼1872) `동래 팔상고'(왜관무역지정상인)를 드나들며 한국상인과 일본상인들의 거간 일을 맡아 했다. 능숙한 일본어 실력 덕에 젊은 나이에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고, 개항당시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일본어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박기종 선생은 두 번의 일본 방문을 통해 신문명의 감명을 받고 철도, 해운, 교육을 통해 조선이 근대산업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확신과 앞선 안목을 갖고 물류수송의 혁신과 근대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해 1889년 기선회사를 설립하여 해운업에 진출했다. 1895년에는 부산상무소를 설립했고, 부산 최초의 신식학교 개성학교를 설립하고 1896년 3월 1일에 약 100명의 학생이 영주동 교사에서 수업을 시작하게 되어 1898년에 제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했다. 개성학교는 110년이 지난 지금도 개성고등학교(옛 부산상업고등학교)로 남아있다. 1898년 외무부 참사관 시절 박기종 선생의 소원인 철도건설에 주력하며 부하철도회사 설립을 인가받았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철도회사 창설이었다. 선생은 1899년 대한철도회사를 설립하고 경원선, 함경선의 부설 허가를 얻어 건설사업을 계속하려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국내 철도부설권이 일본에 의해 독점 되는 것을 막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1902년 심마철도 부설을 계획하고 영남지선 철도회사를 설립하지만 몇 개월 후 부설권이 일본으로 매도되고 말았다. 박기종 선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끈질긴 노력과 도전정신을 배워 앞으로의 더욱 발전된 모습과 부강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도록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 용두산칼럼 - `부산중구문인협회'를 창립하면서 ( 489호 ) 류명선 시인, 부산중구문인협회 회장 `중구문협'은 문화예술 행사 문예지에 상세 기록 보존 역사에 남기는 데 한 몫 지난 5월 11일 동광동 부산숯불갈비집에서 중구에 거주하거나 생활권이 중구관내인 문인 27명으로 구성된 `부산중구문인협회'(약칭 중구문협) 창립총회를 개최, 회칙과 임원진을 선정하고 정식 출범했다. 부산의 각 구마다 오래 전부터 문인협회가 결성되어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유독 우리 중구만큼은 문인 숫자가 열자리 밑이라 몇 번 문인협회 창립을 시도하곤 했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소위 부산 문화예술의 1번지인 중앙동, 동광동, 광복동, 남포동이 우리 중구인데도 불구하고 문화예술단체가 전무하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타구의 문인들이 각종 문예지를 발간하고, 여러 가지 문학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약간의 부러움도 있었다. 그 때마다 중구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그 책임감이 있었기에 문인들의 증가만을 바라고 세월을 기다려 왔는데 이제사 그 빛을 보게 되어 여간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중구만이 가지는 그 독특한 문학현장을 찾아 이제 집중적으로 문학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고 부산뿐만 아니라 6.25전쟁 피난시절에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본산지로서 한국의 저명한 문인들이 남기고 간 중구를 소재로 한 그 작품들을 찾아 새롭게 역사적으로 조명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문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회가 아닌가 싶다. 이제 `중구문협'의 정식적인 발족으로 초대회장을 맡은 자신으로서 그 사명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 중구가 차지한 문화예술의 큰 그릇을 어떻게 담을까 하고 임원들과 열심히 연구하며 토의하고 있다. 이미 우리 중구는 김은숙 구청장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그 옛날의 명성 그대로 부산 문화예술의 1번지를 되찾아 광복동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문화예술의 토양과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때에 `중구문협'의 역할은 그 문화예술 행사를 문예지에 상세하게 기록하여 보존하고 역사적으로 길이 남기는 데에도 한 몫을 다할까 한다. `중구문협' 문예지 발간과 더불어 여러 문학행사에도 중구문인들뿐만 아니라 구민과 함께 참여하여 명실 공히 살아 숨 쉬는 문학의 광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중구문협' 발전에 적극적인 격려와 성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