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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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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여보, 삼부자는 잘 있다오! ( 371호 )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에 접수된 사연 진호, 찬호 보거라. 아마도 이 편지는 애비가 너희 두 아들에 보내는 것이긴 하지만 멀리 하늘나라 너희 어머니가 계신 곳에도 함께 보내야 될 듯 하구나. 늘 푸르고 명랑하고 밝고 활기차게 자란 너희들이었기에 이 애비는 걱정이 없단다. 지난날 어려운 가운데서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학업에 임해 사회로 진출한 너희 둘을 보면서 맨땅을 일구고 씨를 파종해 정성껏 가꾼 농민들의 결실이 떠오르더구나. 며칠 전 뒤뜰의 잡초를 뽑는데 비가 좀 오더구나. 무심코 그냥 비를 맞았단다. 촉촉한 비가 내 머리에서부터 이마와 얼굴로 흘러 내려올 때 문득 문득, 너희 둘을 놔두고 하늘로 올라간 너희들 어머니가 생각이 나 한참을 빗속에서 울었단다. 천하에 몹쓸 병을 얻어 그 어머니가 먼저 가고 없는 가운데서도 아무 말썽 없이 자라면서 우리 삼부자가 겪었던 아픈 세월의 잔영이 낡은 흑백사진처럼 떠오르더구나.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과 허망한 마음으로 한동안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아버지에게 유일한 희망은 너희 형제뿐이었다. 아버지는 한때 삶을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초등학생이던 너희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서 꾹꾹 눌러 참으며 너희들 자라는 걸 낙으로 삼아 버텨왔단다. 고맙다 아들들아… 쌍둥이인 너희 둘이 거의 동시에 취업해 나가던 날, 애비는 이번엔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그리고 먼저 간 너희 어머니에게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단다. 이 땅의 당당한 사회 일원으로 첫발을 내딛은 너희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한없이 행복하단다. 박수를 보낸다. 찬호, 진호야 사랑한다. 대청동 ○○○
- 시가 있는 마을 - 내가 부르거든 ( 371호 ) 내가 부르거든 그때 오십시오 서먹함이나 낯설은 표정일랑 지우고 천천히 가슴 품은 그대의 침착함으로 돋아나게 하십시오, 저 맑은 눈빛으로 꾸며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세상을 칠해보고 익숙함으로 동터 오는 새벽을 키우십시오 세상의 비릿한 냄새 그래서 사람들 기억이 지워질 때 그때는 내게 오십시오 좋아서 마냥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 그대들의 따뜻한 사랑이 녹아서 저 메마른 하늘에도 비가 내리지요 살다가 그립거든 내게 오십시오 참말로 넘쳐나는 시린 가슴 드리지요 그래, 내가 부르거든 그때 오십시오 솜털처럼 결 고운 이슬로 그대들의 아파하는 맑은 두눈에 총총한 별, 그 푸른 별 새겨 드리지요.
- 학원의 정보유출 ( 371호 ) 우리 집 큰애가 이번에 고등학교 2학년인데 요즘 거의 1주일에 한 두통씩 처음 들어보는 학원들에서 홍보물이 날아온다. 물론 집에 있다보면 심심치 않게 전화도 자주 걸려온다. 너무나 귀찮고 짜증이 났다. 우리 집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것과 내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꺼림칙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졸업한 중학교, 심지어 아이 동생도 고등학생 1학년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으면서 학원에 함께 보내주면 학원비를 깎아주겠다는 말까지 한다. 아이더러 이 같은 사실을 말하며 학원에 들러 우리 집 연락처나 위치 같은걸 말해줬냐고 물었더니 무슨 말씀이냐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친구들도 학원 홍보 우편물을 받는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학력평가 점수까지 아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가 과거에 모 학습지 설문조사에서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썼고, 고등학교에 들어온 직후에도 비슷한 이유로 개인정보를 쓴 적이 있는 듯 했다. 이것이 만약 유출됐다면 정말 앞으로 누구, 어느 학원, 어떤 조사를 믿고 이런데 응해줄 수 있을까. 학원들끼리 이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게 일반화 돼 있다면 아주 불쾌한 일이다. 학생들을 많이 모으려면 개인정보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그런 학원의 홍보라면 기분 나빠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걸 학원들은 알아주기 바란다. 남포동 최순옥
- 금연의 기쁨 ( 371호 ) 이제 50 중반인데 담배를 30년 이상 넘게 피우다 최근에 끊었다. 담배를 끊기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담배를 끊으라고 하면 "억지로 금연해서 몇 년 더 사느니 스트레스 안 받고 피우고 싶은 거 피우다가 조금 일찍 죽겠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막역했던 친구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 때문에 금연을 결심하게 됐다. 그 친구는 담배와 술을 항상 달고 다녀 자다 일어나서 담배를 찾는 것은 물론 새벽에 가게 문을 닫아 담배를 살 수 없을 때에는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며 피우다 버린 꽁초라도 피워야 하는 골초였다. 그러던 친구가 어느 날 담배를 끊었으니 절대 자기한테 담배를 주지도 권하지도 말라고 선언을 했다. 사연을 들어 본 즉 아들이 명문대에 합격했었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든지 아들에게 대학 입학선물로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말하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술을 끊는 것입니다" 하더란다. 그 친구는 나는 술을 끊고는 도저히 못 살겠으니 다른 걸로 하자고 했고 아들이 "그러면 담배를 끊으세요"라고 했단다. 이 친구가 곰곰이 생각하니 담배는 먹어서 배부른 것도 아니고 충분히 끊을 수 있을 것 같아 식구들 앞에서 "만일 이 아비가 담배를 끊지 못하면 네 아들이다"라고 공언을 하고는 그 이후로 완전히 담배를 끊었다는 것이다. 나는 금연을 하겠다는 친구의 마음이 확고한 것을 보고 `나도 한 번 해 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아내가 "이제는 당신도 친구 본을 받아 담배를 끊어보세요"하고 강권했다. 그 후 나는 며칠 동안 담배 개수를 줄이고, 금연 관련 서적을 뒤져보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담배를 피우려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아내의 말이 들려 왔다. "당신이 그 친구보다 못한 게 뭐가 있는데, 남자가 돼서 그리 쫀쫀하게 담배 하나 못 끊고 청승맞게 그러고 있어요"라고. 순간 나는 머리를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내팽개치고 아내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가 담배를 피우면 당신 아들이다." 그 후 지금까지 담배 한 모금 빨아본 일 없이 금연을 실천하고 있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친구나 이웃들에게 금연할 것을 적극 권하기도 한다. 친구 덕분에 담배를 끊게 됐지만, 늦게나마 금연을 할 수 있었다는데 대해 나름대로 뿌듯한 미소도 짓게 된다. "역시 당신은 대단해" 하는 아내의 웃음 띤 모습도 떠 올리면서…. 아직도 담배를 못 끊고 있는 분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수동 우정렬
- 농산물 소중함 일깨워준 농촌체험 ( 371호 ) 대학생인 나는 이번 방학에 농사도 체험하고 용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5일간의 농촌체험에 나섰다. 장마가 끝날 무렵 후덥지근한 날씨였으며 한마디로 나에게는 군대생활 다음으로 큰 고생 그 자체였다고 본다. 농협의 조합원 및 준조합원의 대학생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농촌체험이었으며 하루 8시간씩 5일 동안 농사를 도우면 교육지원비를 지급한다는 조건이었다. 첫날에는 화훼농가에 도착해 화분을 털어내는 일이었는데 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더운 날씨에 너무 힘이 들어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첫날부터 이토록 연약해서 되겠느냐는 자책과 함께 견디기로 했다. 햇볕은 용광로처럼 뜨거웠고 화분에는 벌레들이 우글거렸는데 긴 풀에 스쳐 팔다리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생겼고 살갗은 빨갛게 익어만 갔다. 잠깐 쉬는 시간에 집에 전화를 걸어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농부들은 그런 일을 평생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회생활하며 밥 먹고 살겠느냐고 하셨다. 투정도 잠시였고 정말 차츰 오기가 생겼다. 어깨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참았다. 저녁이 되자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은 잠에 푹 빠져 들었다. 피로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채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이 날은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었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 다리가 아팠으며 꽃나무 중간 중간에 끼어든 풀을 골라 뽑는 것도 수많은 땀을 흘리게 하며 손과 어깨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온 종일 같은 일을 반복하니 따분하기도 하고 진땀을 많이 흘려 빨리 하루 해가 지길 바랄 뿐이었다. 나머지 이틀도 비슷한 일을 했는데 공부도 어렵지만 농업을 체험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음을 피부로 실감했다. 역시 세상에는 쉽고 편한 일은 없음을 체험한 것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조금씩 적응이 되어 벌레를 봐도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고 햇빛을 피하기 위해 모자도 쓰는 등 요령이 생겼다. 점차 일도 익숙해졌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면서 늦잠을 잤고 하루일과가 피곤하니 일찍 깰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날엔 각각 다른 곳에서 일했던 친구들이 한곳에 모였다. 옷은 흙투성이고 얼굴은 검게 탔지만 모두들 이만한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이 가득해 보이는 듯 했다. 드디어 5일간의 고생의 대가를 받는 시간. 20만원이 찍혀 있는 통장을 받는 순간, 내가 처음으로 땀 흘려 일해서 받은 돈이었기에 너무나 가슴이 벅찼고 빨리 부모님에게 알리고 싶었다. 사회생활이란 것이 이토록 힘들고 고된지를 느꼈으며 부모님이 우리를 키울 때 얼마나 힘들었을 지를 실감했다. 5일간의 농업 체험을 하면서 한 송이 꽃에도 농민들의 많은 땀과 노력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제껏 꽃 한 송이를 사면서도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그들의 고생이 얼마나 컸었는지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쌀·채소·과일 등 매일 먹는 농산물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이제 농산물들을 예전과는 아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돈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준 농촌체험의 기회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남포동 최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