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광장
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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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명언 ( 355호 ) 자유롭게 행동하라. 독립적이 되라. 그리고 확신에 따라 행동하고 그 확신을 두려워하지 말라.-임어당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얻는 것도 최소한의 선에서 그치도록 하라. 너무 복잡한 인연을 맺으면 거미줄에 걸리고 만다. 독립성은 모든 선물을 포기해서라도 반드시 지켜야할 귀중한 것이다.-그라시안 새벽은 당신 인생의 시작이요, 석양은 당신 인생의 끝인 것처럼 살아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에게 새 힘과 새 지식은 남들에 대한 당신의 선행에 근거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존 러스킨
- 근대문화지도 10 - 부산시 공보관 ( 355호 ) 그림과 조각을 감상하던 곳 옛 시청 앞 광복로 입구 일제 강점기 때 조개표(셀)석유회사 사무실을 경남도에서 인수하여 경남공보관을 설립했다. 이곳은 주로 정부홍보물을 전시하는 곳이었으나 전시장을 마련하여 3·1기념미술전과 8·15경축미술전 등이 매년 개최되었다. 경상남도와 부산시가 행정 분리될 때 부산시가 이를 인수하여 1963년 부산시공보관이 되었다. 이후 67년 부산시전시관으로 개관하면서 1∼2층 전시홀을 갖췄다. 당시 부산화단은 김남배, 서성찬, 양달석, 우신출, 김원갑, 김봉진씨 등 부산사람이 주축이 된 그룹과 김종식, 김윤민, 김경, 임창, 임호, 김봉기, 문철수 등의 주로 일본에서 그림공부를 한 유학그룹으로 나뉘었다. 미남인 임창씨는 그림보다 만화에 관심이 커서 상경하여 만화계에서 크게 성공하였으며 김봉기씨는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광주사람 조목하씨와 남성여고 임홍근씨, 부산중학교 현용건씨도 이 때 활약했다. 이북에서 피난 와서 정착한 송혜수씨는 부산화단과는 교류가 크게 없었으나 미술학원을 개설하여 허황씨 등 제자를 많이 양성했다. 임응구씨는 동경미술학교 출신의 부산화가인데 일찍이 일본인으로 귀화하지만 형 임응식씨는 사진작가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서울대에서 교양과목으로 사진을 가르쳤다. 한국화가로는 이석우씨와 이규옥씨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다. 청초 이석우씨는 통영중학교, 진해, 부산으로 전출되어 동아대에 근무하면서 통영중학교 근무시절 첫 전시회를 부산에서 열고, 미공보원 등에서도 작품전시회를 가졌다. 윤재 이규옥씨는 진주 사람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며 역시 동아대에 출강했고, 강원도 사람 추강 이협섭씨도 부산에 터를 잡고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였다. 경남공보관 시절이던 1960년에 김봉진 유화전이 열렸고, 62년에 오제봉 서예전, 심봉섭 조각전, 진병득 양화 개인전, 부산대구 미술교사 파스텔전 등이 열렸다. 이후 63년 부산공보관, 67년 부산시전시관으로 재개관하면서 부산초등교원 미술교육연구회전, 경남여고 사제동문전, 길동인전, 고미술전, 경남사진초대작가전, 한성여대미술과 작품전 등 규모가 큰 단체전이 주로 열리면서 김영교 유화전, 조동벽 유화전, 남석 김성조 서예전, 성백주 회고전, 김동규, 김홍규, 정원일 3인전, 김원 작품전, 김종근 유화전 등 개인전도 수없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73년 옛 조방 터에 시민회관 전시실이 개관되면서 그 빛을 잃었다.
- 시가 있는 마을 - 춘풍 천리 ( 355호 ) 손흥열 봄내음 은은한 초록의 내음 볼그란 얼굴가엔 봄님의 속삭임 길섶의 울타리엔 개나리의 인사 산자락 양지쪽엔 진달래의 노래 노란저고리 분홍치마 새봄의 단장 꽃가마 두리둥실 꽃향기의 메아리 겨울잠의 기지개 달래 냉이 씀바퀴 벌 나비 어우러진 봄날의 향연
- 4,000원의 가치 ( 355호 ) 최근 신문 일면을 펼치면 보이는 기사는 온통 골프로비, 성추행, 뇌물수수 등 불미스런 사건일색이다. 이런 분통터지는 뉴스들로 지쳐 버린 와 중, 나로 하여금 모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 일이 있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추가로 잘못 징수된 10불의 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20불 가량의 우편료를 들여 시민에게 돌려주었다는 정직한 공무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역으로 이런 공무원의 모습을 한국 땅에서 그려본다면 국무총리가 나서서 표창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기이한(?) 생각이 든다. 지난 해 2월의 어느 날 저녁 해운대에서 일을 보고 시내로 가기 위해 광안대교로 진입한 나는 통행료를 지불하기 위해 어두컴컴한 차안에서 급히 돈을 꺼내다가 천원을 내야 할 것을 5천원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은 채 유유히 빠져 나왔다. 그 후 2주 남짓 지났을까? 느닷없이 광안대로 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의 낯선 편지 한통이 내게 날라 왔다. 이상하다, 요새는 과속 한번 한 적 없이 철저한 준법운전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조금은 긴장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보았다. 광안대로를 통과하면서 초과 정산된 4,000원을 돌려주겠으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안내문이었다. 잠시 나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 날 밤, 톨게이트의 그 직원은 거스름돈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내 차량번호를 적고 주소를 추적하는 수고를 거쳤음이 틀림없으리라. 나는 그 직원분의 청렴함과 성실함에 감탄, 마음으로부터 감동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대한민국 땅에도 이런 마인드를 지닌 직원이 있구나 하고. 이런 분들이 있어 숨만 쉬고 살아가기에도 벅찬 이 세상이 가끔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신문지면의 힘을 빌려나마 단돈 4,000원에 따뜻하고 희망찬 한국의 힘을 보여준 그 분께 숙연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중앙동 홍경표
- 토마토 축제를 다녀와서 ( 355호 ) "일어나라, 얼른 일어나라" 귓가에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대충대충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우리 가족은 얼마 전 광고에서 봤던 토마토 축제에 갈려고 평소와는 다르게 일요일인데도 일찍 서둘렀다. 친구 딸애랑 예쁜 우리 두 공주랑 같이 잠이 덜 깬 눈으로 차를 타고 갔다. 창밖의 풍경은 약간 흐린 날씨였지만 가끔 보이는 햇살에 눈을 동그랗게 떠서는 연신 "아∼∼ 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바깥구경을 하였다. 강변을 따라 달리다 축제 장소인 강서체육공원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저기 두리번 하고 있는데 저기서 "가족걷기대회가 있으니 가족 분들은 무대로 나와 주십시오"라는 멘트가 나왔다. 일찍 오면 상품 2개 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우리는 열심히 뛰어서 무대로 나갔다. 우리 조는 B조로 주장을 따라 찻길 옆을 지나 토마토 비닐하우스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곳으로 갔다. 전날 비가 온 탓에 땅은 질퍽했지만 모래가 날리지 않아서 괜찮았다.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보니 토마토 감별기가 있었지만 작동은 하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른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토마토가 열려있는 광경을 보았다. 먹을 때는 몰랐던 수고로움에 잠시 고개가 숙여졌다. 사실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토마토 비닐하우스 구경은 처음이다. 도시에서 살다보니 구경할 환경도 안 되고 바쁘게 살아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어쩌면 애들 덕분에 나 자신도 좋은 시간을 가진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졌다. 하우스 앞 아주머님이 갓 딴 토마토 하나를 주셔서 먹으니 정말 달았다. 시장에서 사먹던 토마토는 설탕에 절여 먹거나 찍어 먹기도 했는데 하우스 토마토임에도 불구하고 당도가 높은 것 같아 참 맛있었다. 토마토는 소금에 찍어 먹어야 음식 궁합이 좋단다. 토마토의 원산지는 멕시코라는 것, 토마토 붉은 성분인 리코펜은 전립선암 예방에 좋다는 것도 여기 와서 설명을 통해 배우게 됐다. 여러모로 우리 가족과 나에게 좋은 시간이었다. 일찍 일어나라는 신랑 목소리에 조금은 짜증도 났었지만 신랑덕분에 좋은 구경과 보람 있는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부산에서 살지만 시골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도시 아이들이 시골을 몸으로 체험하고 배운다면 시골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먼 미래는 서로 공존하며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도 되고 이거야 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평동 박금란
- 살아있어 행복한 봄 ( 355호 ) 학교 다닐 때 글짓기 시간에 글을 써보고 아들 군에 있을 때 편지를 써보고 이렇게 마음 설레며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내 나이 50전에 뇌병변으로 중도장애자가 되어버렸다. 정말 열심히 살아온 삶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장애자가 될 줄은 몰랐다. 없는 살림살이에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온 삶이었다. 왼쪽이 마비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왔지만 아직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에 살고 싶었다. 애기들 걸음마 배우듯 조금씩 조금씩 나아져서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지팡이에 의지해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희망인 것이다. 망가진 나의 모습은 조금은 실망이지만 현실에 만족하며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몇 년을 집안에서 움직이고(청소, 설거지 등), 겨울에는 추워서 더더욱 못나갔다. 봄을 기다리는 희망의 마음으로 하루 하루 지냈다. 드디어 따뜻한 봄이 왔다. 처음 봄볕을 맞으러 밖에 나갈 때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봄 햇살이 좋고 파란 새싹들이 나를 반긴다. 다른 이처럼 멀리 봄님을 맞이하러 가지 못하지만 담 넘어 벚꽃이 나를 위해 웃어주고 언덕 위에 노란개나리가 나를 부른다. 비록 중도 장애자가 되어 삶이 어렵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기에 봄을 볼 수 있어 우리 가족에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보수동 강미숙
- 동네 산악회 ( 355호 ) 옛말에 보리누름에 중늙은이 얼어죽는다는 구전과 같이 요즈음 밤의 기온은 벚꽃이 산 가득히 흐트러진 꽃잎들을 빨리 날려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당기려는 듯 몸을 움츠리게 한다. 꽃잎이 흩날리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을 입안 가득히 향으로 느끼다 문득 내일이면 산에 갈 생각에 가슴이 설레인다. 이번 코스는 진달래 만발한 창원 비음산 이라던데…. 각기 제가 살고 있는 동네마다 산악회가 있지만 우리 동네의 동광산악회는 고령층이 많은 편이라 전문 산악인은 적다. 남들과 같이 높은 고지의 산은 못 가지만 한달에 한번씩 계절에 맞게 꽃과 녹음이 우거지고 단풍이 물들기도 하는 아름다운 산들을 회장과 등반대장, 임원진들이 고심하여 전국을 찾아간다. 나이가 많은 회원들이라 산에 오르고 내림을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아 선두 등반대장은 무전기를 들고 이끌며 후진 등반대장은 낙오 하려는 회원들을 자신의 끈기로 갈 수 있게 격려와 용기를 주며 정상까지 올라간다. 정상에서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며 야호하는 함성과 가슴 가득한 일상의 노여움과 욕심들을 산 바람에 날려 보내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들을 찍는다. 특히 중노동으로 다리가 불편한 나는 혼자서는 올라가지 못하는데 등반대장의 도움으로 산정상 정복하는 기쁨은 뭐라 형용하기 힘들다. 또 정상에서 산을 내려 갈 때도 등반대장이 함께 해주어 온 산 가득히 `등반대장님, 고맙습니다'하고 외치고 싶을 정도다. 아마 나 뿐이 아니라 우리 회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회비는 적지만 등반 할 때마다 떡을 가지고 오거나 사탕 한 봉지, 과자 한 봉지, 과일 한 바구니, 따끈한 계란 한 소쿠리를 배낭 안에서 꺼내어 한 개 씩이라도 다 같이 나누어먹으며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어 별 것 아닌 반찬들을 주거니 받거니 맛있다면서 마음과 마음이 오고간다. 더러는 다투기도 하고 더러는 박장대소도 하고 끈끈한 정들로 묶어진다. 시골도 아닌 도회지 한복판에 이런 아름다운 인간애가 있다는 것이 항상 자랑스럽다. 비록 부유한 동네는 아니지만 투기도 없고 돈 내음도 나지 않는 잔잔한 안개꽃 다발같은 내 동네가 사랑스럽다. 광복동 김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