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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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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 있는 마을 - 보름달 ( 353호 ) 손흥열 작 풍만한 젖가슴 바다위에 드리우며 파도는 일렁일렁 겨울펼친 바닷물결 여울져 휘퍼붓는 달님의 정념 포근하게 아담하게 살포시 드리우네 삭풍은 겨울가지 얼려만 놓고 귓가엔 겨울바람 윙윙거리며 무심한 고깃배는 만선의 꿈을 싣고 밤하늘의 별님식구 포구의 낭만잔치.
- 독자투고 - 과학의 둥지 대전으로 … ( 353호 ) 2006년 2월 2일 대청동생활과학교실에서 우리 꼬마 과학자들은 과학자들의 고향인 "대전"으로 과학탐구여행을 떠났다. 부산역에서 KTX를 타고 갈 시간을 기다릴 때 마음이 설레였다. 드디어 KTX를 타고 출발, 1시간 50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렸다. 기대했던 대전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은 전세버스를 타고 과학의 꿈과 미래가 있는 곳 "국립중앙과학관"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을 처음으로 반갑게 맞이해준 것은 "십이지신"이었다. 그런데 십이지신 모양이 이상하였다. 마치 미래의 로봇 모양 같아서 내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건너온 것 같았다. 그리고 생동감도 느껴졌다. 다음으로 과학관 안에 있는 과학작품을 둘러보면서 구경을 해보았다. 우리들이 생활속에서 이용하고 있는 "나노"로 이용된 물품과 미래의 전화기인 "화상전화기" 등 발명품이 있었다. 이런 신기한 발명품도 있었지만 "멀미방"이라고 그 방에 들어가 움직이면 갑자기 멀미가 날것 같은 공간도 있었다. 습곡에 대해서 땅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하는구나 느끼고 우리 은하계에 대하여도 공부하였다. 천체관에서는 블랙홀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블랙홀은 한 우주의 소멸체가 점점점 커져서 소멸되면서 생성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우리의 우주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신기하였다. 다음으로는 인간의 몸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우리의 몸 안에서 많은 일이 발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과학관에서 근무하는 분은 "선덕대왕의 신종에는 맥놀현상이 있고 다른 종보다 소리도 무척이나 곱다"고 하셨다. 구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조상들의 모습을 보고나서 점심을 먹었다. 아쉽게도 국립중앙과학관 견학을 마치고 "대덕연구단지"로 향했다.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구경을 하진 못했지만 10여분간 버스를 타고 여러 건물을 보았다. 부산으로 올 때는 다행히도 멀미를 하지 않고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부산까지 무사히 왔다. 집에 가면서 어머니께 대전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드렸다. 어머니도 재미가 있으신 눈치셨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과학자들의 고향인 대전에 다시 과학탐구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 대청동 생활과학교실 심다희
- 독자투고 - 봄 ( 353호 ) `봄!봄!봄! 봄이 왔어요. 우리의 마음속에도∼' 입춘이 지난 지 꽤 오랜 시간이 되었다. 겨우내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던 추위라는 녀석도 서서히 자리를 옮겨 안고 있는 것이 보인다. 딱딱한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앙증맞은 노오란 싹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뽐 내녀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의 마음에는 벌써 봄이 와 있지 않은가? 쇼윈도우의 마네킹도 벌써 울긋불긋 봄옷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 되었다. 지난 가을 새봄을 예약하며 가버린 낙엽은 새봄 새로운 새싹을 돋기 위한 영양제로 나무에 받쳐주고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머지앉아 우리 시야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오랜만에 환히 열어놓은 창 밖으로 복병산을 쳐다보았다. 진한 커피 향에 즐거운 줄 알았던 코끝이 봄 내음 때문에 즐거웠다는 것을 알고 눈을 지그시 감아 지난 봄 연분홍 치마를 둘렀던 벚꽃 나무를 그리워 한다. 복병산도 배시시 몸을 풀며 서서히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부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여지없이 봄이란 녀석은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모든 것은 돌고 돌아 원위치로 복귀하는 회귀본능을 우리는 자연에서 또 한번 실감을 한다. 아이로 태어나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평균수명이 아무리 길어지고 있다지만 우리는 백년이라는 사이클 안에서 삶이라는 것을 엮고 풀고 있다. 가끔은 지난 시간 속으로 돌아가 나로 인해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을 맞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점점 자주 지난 시간이 그리워지고 있는 것이 이제는 세월을 꽤 많이 보냈다는 것을 실감한다. 자연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 참 좋을 듯도 하다. 잠시의 추위를 이기고 나면 여지없이 화려한 형형색색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으로 봄이라는 장군을 앞세워 의기양양 하게 다시 오지 않는가? 우리의 삶에도 봄을 찾아보자, 잠시 삶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생각하자. 항상 겨울이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에 난 봄비를 참 좋아 한다. 영화 속의 클라이막스 장면처럼 봄비가 그치고 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있든, 없든 봄비가 올 때의 설레임이 좋은 것이다. 대지도 봄비가 내리고 나면 새 생명의 탄생 준비에 들어가지 않은가? 시인 정용철 님은 봄은 우리에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한다. "흙이 부드러워지라 한다. 씨앗이 깨어나라 한다. 꽃이 웃으라 한다. 잎이 기뻐하라 한다. 강이 흐르라 한다. 산이 오르라 한다. 새가 노래하라 한다. 나비가 춤추라 한다. 보슬비가 용서하라 한다. 바람이 사랑하라 한다." 대청동 안정숙
- 기 고 - 3.1절이 또다시 돌아온다 ( 353호 )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며칠 전 퇴근 후, 애들 아빠가 빌려온 `터미널'이라는 비디오를 봤다. 제3국 출신의 여행자가 순수하게 여행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하였으나, 미국 뉴욕 공항에서, 본인의 출국과 함께 일어난 쿠테타로 인해 입국도 출국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입국허가가 나지 않아, 터미널 객사 안에서 수십 개월을 노숙자 비슷한 처지로 지내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그 영화를 다 보고나니, 문득 우리나라도 주권을 잃어버리고 수십 개월에는 도저히 견줄 수 없는, 장장 35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제 치하의 나라 없는 사람들이 되었던 우리의 역사가 생각났다. 누가, 무엇을 위해 나라를 다른 이들의 손에 넘겨줬든, 혹은 빼앗겼든 그 아픔은 고스란히 힘없는 국민들의 몫이다.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으나, 아직도 일본 순사의 시퍼런 칼날을 기억하고 있는 그분들이 생존해 계신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나와 닮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삶에 대한 욕심이 점점 늘어나면서, 내 나라에서, 내 어머니,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말을 하고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순간, 신문의 사회 정치면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국내외 힘없고 권력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도, 법이나 제도에 묶여 외면당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대하면, `우리나라 정말 안 되겠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 잃은 설움이란 것이 영화속이든, 나이든 어른들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얘기든지 그리 반갑지 만은 않다. 독립… 식민지나 속령으로 있던 지역이 새로운 주권국가로 발족하는 것. 독립의 사전적인 의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영토, 주권, 국민을 모두 갖춘 우리나라, 대한민국. 그러나 진정한 독립이란 이런 눈에 보이는 것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생활속에 뿌리박혀 있는 일제잔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서 안돼'라는 패배의식,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박으로부터의 독립도 이루어져야 한다. 후손들에게 식민지 조국을 물려주지 않으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그분들의 그 뜨거운 심장이 채 식지 않은 그날, 3.1절이 또다시 돌아온다. 중앙동 윤정음
- 칼/럼 - 음주생활의 첫발,시작은 대학생활에서 첫醆 ( 353호 ) 대학생활의 시작이라 함은 고등학교 때까지의 빈틈없이 짜여진 획일적·타율적 방식에서 벗어나 한층 자율적인 학업생활을 학생 본인이 책임져야 할 생활일 것이다. 하지만 `자율적인 것'을 대학생활이 시작됨과 동시에 학생들은 그 모든 기본적 규칙들을 자신에게 맞춰 순식간에 유동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새롭고, 자율적이며 그 가운데 통제와 책임이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대학가의 새학기는 주정생활로 만연하다. 늦은 밤이면 대학주변 유흥가는 불야성을 이루며 학생들은 3월의 꽃샘추위도 마다 않고 길거리는 온통 이들의 캠퍼스가 된다. 어김없이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다시피 대학가의 고전적 문호의 수용보다 사교적인 음주가 우선이 되어서 대부분이 이러한 음주 한가지라면 순조로운 대학생활이 되는 것 마냥 음주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나타낸다. 이들이 누리는 자유를 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의 대학생의 `음주빈도' 조사에 따르면 전체 3,615명 중 매일 술을 마신다는 학생은 2.3%(83명), 일주일에 3∼4회 마시는 경우는 10.9%(393명), 가장 많이 해당되는 음주빈도로 일주일에 1∼2회 마시는 경우인데 전체의 26.5%(957명)가 이에 해당되어 전체의 39.7%가 일주일에 한 두 번 이상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19.1%(697명)는 한달에 3∼4회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달에 1∼2회 마신 경우는 전체의 20.8%였다. 이와 같은 통계에 나타난 수치만으로 그 정도를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의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대학생 음주빈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생들의 음주문화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없지 않은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낯선 인간관계에 대한 좀 더 손쉬운 교제와 서로의 친목도모를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통제와 함께 이루어져야 대학가의 미덕이 되어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에 올바르고 신사적인 음주문화를 가져야 하는데 새 학기 초의 뉴스 헤드라인에 빠질 수 없는 사건사고의 소재가 되고 있기에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술에 만취되어 인사불성 상태로 불쾌한 경험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학생의 68.4%와 여학생의 48.9%으로 나타난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인 곤란함을 겪은 것이 25.4%로 가장 많고, 말다툼으로 시작된 친구와의 싸움 16.7%, 폭력이 14.3%, 위법행위 11.9%, 성추행 4.7%, 성폭행 0.6% 등 자칫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경우들로 다양하다. 아직은 `학생'이라는 사회에서 보호받는 입장에 있는 신분이기에 위법의 경우에도 선처가 있겠지만 잘못된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서 계속적으로 잘못된 음주문화로 굳혀간다면 대학가의 음주 행태는 돌이켜 볼 수 없을 만큼의 심각성을 가지고 사회적 골칫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 교육적인 대안으로 신입생을 위한 철저하고 유익한 오리엔테이션의 정착으로 `교양강좌' `세미나' `채플강좌' 등 흥미로운 소재를 이용한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눈길을 끌어야 한다. `돌림 술은 단결에 도움이 된다', `윗사람이 술을 권할 때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술자리에서 일찍 자리를 비우는 것은 무례하다' 등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 직장인들의 회식자리에서도 서서히 없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학가는 이러한 술에 대한 억지스런 가치를 버리지 못하고 있어 이에 대한 원인을 찾아 올바른 酒문화의 개선과 정착에 힘써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