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문예마당 - 여여한 모임 
  • 578 호
  • 조회수 : 74
  • 작성자 : 홍보교육과

  1992년 봄이었다. 시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간암 판정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향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달리하신 것이다. 대부분 집에서 장례를 치르던 시절이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장의사가 왔다. 장의사는 장례식에 필요한 장례 물품과 장례 일정에 대해 친절하게 상담, 일을 신속하게 처리해 주었다. "밥 세 그릇과 나물 세 가지를 준비하십시오. 밥은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장례 지도사가 사잣밥을 준비하라고 했다. 
 정말 난감했다. 집엔 임종을 지킨 사람뿐이라 사잣밥을 할 사람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동네 아주머니를 찾아가서 부탁했던 그 순간이 오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 모임을 만들자.'
 결혼한 이후로 어떤 모임도 안 하던 내가 286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맏며느리 회원 모집〉 
 뜻이 있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자격요건-
1. 영주 2동에 거주하는 맏며느리여야 함
2. 삼 대가 한집에 살고 있어야 함 
  연락처:051)***-****

 에이(A)4 용지에 프린트를 대여섯 장 해서 눈에 잘 띄는 동네 전봇대에 붙였다. 그리하여 6명의 맏며느리가 모였다. 맏며느리 모임의 취지는 회원의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조의금을 전달하고, 상갓집의 일을 도와주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모임이 마치 부적이라도 되는 듯이 처음 10여 년 동안은 돌아가시는 분이 한 분도 없었고,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칠순, 팔순, 시누이 시동생의 결혼식만 있었다.
 설날엔 마을회관에 모여서 떡국을 끓여 어르신들께 세배하고, 서울에서 결혼식을 하는 회원이 있으면 관광버스 안에서 하객들에게 일사불란하게 잔치 음식을 나눠드리기도 했다.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건 팔을 걷어붙였다. 제사가 끝난 다음날엔 동네 어르신을 모셔서 제사음식을 대접하고, 거동 못 하는 어르신에게는 쟁반에 담아서 갖다 드렸다. 누구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네 제사가 언제인지를 알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시절이었다. 
 맏며느리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였지만, 마구잡이로 시댁 흉을 보거나 힘들고 속상한 일을 쏟아내지 않았다. 
 "한 동네 살아서 다 아는 이야기를 이 좋은 날 말해 뭐해?" 
 우리는 속상한 이야기나 속 터지는 말보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어디서 주워들은 유머를 말하며 와하하! 웃곤 했다. 
 맏며느리 회원들도 이제 이순(耳順)이 다 넘었다. 
 1994년 4월에 시작한 맏며느리 모임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아 내년 3월에 3박 5일 하롱베이 여행을 추진 중이다. 이 모임엔 회장이 없다. 2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맡는 총무만 있다.
 소박하나 빈곤하지 않고, 흰 머리와 잔주름이 늘어가는 만큼 마음의 여유를 찾는 우리 맏며느리 회는 아직 여여(如如)하다.

 황미숙
동화작가, 작사가
동화책 『아빠는 쓰기 대장』 『손가락만 까딱하면』 
그림책 『토끼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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