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업의 중구이야기 <11> 부산부립병원(상)

"이 병원은 우리 정부가 미국 선교사 알렌(Allen H·N, 한국명 安蓮)을 초빙하여
서울에 설립한 왕립병원 광혜원(후에 제중원) 보다 8년이나 앞선 것이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병원으로 기록된다"
개항한 부산항엔 제대로 된 병원시설이 없었다. 일본 초량공관(관수가)에 어용의사가 파견되어 있었지만 그 의료시설과 제반 여건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수신사 교환으로 부산에 건너 온 권위있는 군의관이 일본 외무성에다 제대로 된 병원설치를 강조하기에 이르렀고, 일본정부가 이를 인준하여 부산항에 서양식병원을 설립하게 된다.
1876년 11월 13일의 `일본관립제생의원'(官立濟生醫院)이었다. 이듬해 1월 초대병원장으로 해군군의관 출신 시야의철(矢野義澈)이 부임하고 2월 11일에는 병원 개원식을 가진다. 일본관립제생의원은 왜관시대의 대관옥(본정2정목, 오늘날 동광동 2가 우리은행 북쪽 주차장)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부산부립병원 소사(小史)」에 밝힌 제생병원 건립목적은 `아관민(我官民)의 보호(保護)와 치술(治術)을 한민(韓民)에게 베푼다'라는 번드레한 미사여구를 쓰고 있지만, 다분히 그들 일본군국주의의 팽창을 위한 대륙거점으로써 계략적인 의원 설치임이 분명하다. 이 병원은 우리 정부가 미국 선교사 알렌(Allen H·N, 한국명 安連)을 초빙하여 서울에 설립한 왕립병원 광혜원(후에 제중원) 보다 8년이나 앞선 것이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병원으로 기록된다.
1878년의 「한성순보」는 1877년 4월과 5월에 역병(疫病·전염병)이 만연하였고, 6·7월에는 이질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도 하였으나 제생의원의 의술로 치유되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염병이 창궐한 후부터 매월 15일을 우두접종일로 정하여 역병예방활동에 나섰으나 수혜대상은 일본인이지 한국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개업한 제생의원은 2년만인 1879년 6월 일본에서 건너온 콜레라가 번져 의사고 간호원이고 할 것 없이 북새통 속에서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 콜레라는 곧장 전국토로 퍼져나갔고, 때문에 부산은 콜레라의 전파 근원지라는 달갑지 않은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11월이 되자 차가워진 날씨 덕에 콜레라가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이런 경황 속에도 웃지 못 할 희극 한마당이 벌어졌다.
제생의원에서 보내온 소독약 DDT를 받은 동래부에서는 이것이 무엇인지도,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것인지도 모르던 그 무렵, 동래부사 윤치화(尹致和)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 물건을 개울에 내다버리게 했다. 소독약인줄조차 모르는 행정가들로 인해 콜레라는 더욱 극성을 부리며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했다. 심지어 돌림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들판에 오두막을 지어 그 안에 시체를 방치하기만 했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콜레라 정보가 전혀 없던 정부는 중신(重臣)을 부산에 보내여 별려제라는 굿판을 벌이게 했을 따름이었다.
이 해가 저무는 11월 어느 날 제생의원에 갓 쓰고 도포 갖춘 스물 네댓 보이는 젊은이가 찾아와 천연두 종두법(種痘法)을 배우러 왔노라 한다. 이 당돌한 젊은이가 마음에 든 송정양 원장이 종두법을 가르쳐 주게 되었는데 이 젊은이가 바로 충청도 충주사람 지석영(池錫永), 그 사람이었다. 훗날 우리나라 종두법의 아버지로서, 한글학자로서 이름을 크게 떨치는 사람이다.
문의:010-8224-5424 부산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