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자락 - 햇빛이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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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7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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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나이스중구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걸며 내려 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약력〉 1962년 서울 출생,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당나귀의 꿈』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 장편동화 『돼지저금통 속의 부처님』 『마리이야기』, 산문집 『하루』 『천국에서의 하루』 『당신이 별입니다』 등 상재.
오늘 마주치는 것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걸려 당도한 것일까요. 당도하는 순간 얼마나 많은 떨림과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그래서 봄이 오고 꽃이 핍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공간과 시간 사이 출렁이는 섬세한 음성이 들립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 물리적 풍경에서부터 우주적 내면의 리듬까지 언어의 사슬로 가득합니다. 그 언어들은 모두 이 세계가 어떻게 하나인지 새처럼 지저귀지요.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신비한 목청으로 매일 기적을 피워냅니다. 당신이 건네는 말, 낡은 사물이 건네는 말을 내가 제대로 못 듣고 있진 않았을까요. 걱정이 되면서도 행복해집니다. 비밀이 환해지는 하루입니다.
김수우/시인, 백년어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