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으로 본 세상

광일초등 5년 양지혜
2년이란 세월을 같이해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나 봅니다
나에게는 때묻은 운동화 한 컬레가 있었습니다. 2년 전, 3학년 때부터 늘 나와 함께 했던 운동화입니다. 나의 그림자처럼… 아니, 그림자는 그늘이 지면 금새 사라지지만 운동화는 그늘이 져도 언제나 항상 나와 함께 늘 붙어 다녔습니다. 달리기 할 때, 체육할 때, 친구들과 잡기놀이 할 때, 늘 언제나 붙어 다녔습니다. 지금은 내 곁에 없지만… 그 운동화는 어머니처럼 내가 마구 짓밟고 구겨도 아프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내가 바라는 것을 다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3학년부터 얼마 전까지, 처음 내가 그 운동화의 새 주인이 되었을 땐 예쁘고 새 하얗고 깨끗한 모습이었지만 세월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운동화는 처음의 그 깨끗한 모습을 잃어갔고… 내 마음도 점점 운동화가 더러워지는 만큼 그 운동화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싫증이 날 때면 엄마에게
"엄마! 운동화 좀 사 주세요. 체육시간이나 운동화 신었을 때 사람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지 아세요?"
"뭐가 부끄럽니? 아직 멀쩡한데 운동화는 무슨 …"
이렇게 또 몇 주가 흘렀고 나는 다시 또…
"이제 많은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더럽잖아요. 운동화 좀 사 주시라구요!"
이렇게 짜증 낼 정도로 몇 번이고 나는 깨끗하고 예쁜 새 운동화를 사달라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아직 멀쩡한 운동화인데,
"얘가 미쳤니?"
이렇게 야단치시면서 안된다고 더 신을 수 있다며 꾸중을 하시곤 하셨고, 그 때묻은 운동화 때문에 나는 제일 좋아하던 과목인 체육을 하는 날이면, 항상 부끄러워서 고개도 잘 들지 못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잘 뛰어 놀지도 않았고, 체육하는 날을 빼면, 운동화는 언제나 신발장 구석에 처박혀 있었고, 나는 운동화를 볼 때마다 짜증이 더 나곤 하였기게 혼자서 마냥 짓밟고 시멘트 바닥에 갉아 뭉게기까지 하였고 더 구석진 곳으로 운동화를 잡아넣어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예쁘고 깨끗한 새 운동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새 운동화가 생겼을 때, 나는 활짝 웃었고, 체육하는 것이 즐거워졌고,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 놀았습니다. 새 운동화는 불루진 바탕에 양 옆에 흰 가족에 빨간 줄무늬가 있는 것으로 파란 끈을 매는 새로운 디자인이었기에, 걷거나 뛰어 놀 때마다 나의 마음은 한층 더 즐거웠습니다. 괜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 나의 신발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왼쪽 신발 박음질이 찢기어 나가버렸습니다. 왠지 새 운동화도 자꾸만 자꾸만 그 때묻은 운동화의 모습을 닮아갔고, 산뜻했던 내 마음도 자꾸만 허물어져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운동화였다면 어땠을까, 주인에게 버림받은 마음을 생각하니 정말 그 운동화에게 미안하고 그립습니다. 새 운동화를 가지기 전에 내가 왜 그 운동화를 싫어했는지, 왜 신발장 구석에 처박아 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그 때 때묻은 운동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운동화랑 2년이란 세월을 같이해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나 봅니다. 빨간 줄에 앞에 `3의4 양지혜'라는 글자가 너무나도 기억에 남습니다.
생각해 보면 3학년 운동회 때 그 운동화를 신고 2등으로 뒤지던 우리팀을 내가 1등으로 역전시키게 했던 운동화였습니다.
그 때 나와 운명을 함께 했던 시간과 추억들의 공을 생각하니 한층 더 그 운동화가 고맙게 느껴집니다. 어느 책의 한 소절이 생각이 납니다.
등을 밝히는 기름과 초는 자신을 다 태워 어두운 곳을 지키다가 끝내는 없어지는 것처럼, 2년동안 내 발 밑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도 짜증 한 번 안내고 내 명령을 수행했던 그 고마웠던 모습들을 잊은 채 구박을 했던 내가 정말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해 볼수록 왜 그랬는지… 의문이 날 정도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의 일꾼으로서, 나의 운동화나 기름과 초처럼 세상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두 눈을 감아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언제 그 운동화를 볼 수 있을지…
그립습니다.
그 때 그 때묻은 운동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