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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안중근 이춘상을 아시나요?
  • 521 호
  • 조회수 : 226
  • 작성자 : 홍보교육과

큰일을 한 부산 영주동 사람 일본인 소록도 원장을 살해

큰일을 한 부산 영주동 사람인 이춘상(李春相)은 제2의 안중근으로 불린다. 일제통치하에 사형당한 그는 한센병자(문둥이)로 일본인 소록도 원장을 식칼로 살해한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부산에 한센병자들이 집단으로 수용된 곳은 남구 감만동 옛 부산외대 본관자리이다. 1905년 호주선교사들이 첫 입항한 곳이 감만 부두이다. 감만동에서 집단으로 수용하던 한센식구들이 호주선교사들의 도움으로 구제품도 받고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하고 선교사의 도움으로 수용소가 부산의 첫 예배소가 됐다. 교회로써는 부산진교회 초량교회가 세워지고 일신기독병원도 세워졌다.
감만동 수용소는 용호동으로 옮겨지고 1910년 한일 합병 후, 전국 나환자수용소가 일제히 전남 소록도로 옮겨져 지방에 한센병자들의 거처는 없어졌다. 수용된 소록도 한센병자의 이름도 나환자로 명칭을 바꿔 일본전쟁에 필요한 군수 물자를 생산하게 했다. 수용된 환자들은 총독부 지시로 하루 한 끼의 식량으로 벽돌 굽기, 각종 짐승 사육 등 중노동을 했다. 일본 제국주의통치를 못 마땅히 여기고 당시 소록도 원장(당시 차장급)을 죽이기로 마음 먹고 늘 계획한 이가 이춘상이다.
그는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한센병자가 돼 부산에서 집단생활을 했다. 대구 복심원(지금의 대구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문서를 보면 본적은 부산부영주정(釜山府瀛州町)477번지라고 적혀 있다. 그의 사형 죄목은 `일본제국정치에 불령인으로 소록도 원장을 식칼로 살해했다. 형법 제99조에 의해 사형을 처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당시 일본통치기 각종신문은 「동경(東京)일보」 「중국(中國)신문」 「대판(大阪)조일」 「광도(廣島)신문」에는 범인 이춘상은 소록도 원생이고 자주 폭력을 가했고, 위대한 위인 휼륭한 의사 원장을 살해했다고 대서 집필했다. 일본천황궁전에서 발간한 카에데노 카게(楓陰)잡지(1942년 6월 20일자)는 더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흉악범 이춘상은 보은의 날 소록도원장께 감사하는 날에 소록도 식구들 3000명이 모인 자리에서 원장이 단상에서 연설을 할 때 맨 앞자리에 있다가 식칼을 들고 단상에 올라가면서 `원장 너는 조선인 문둥이를 이렇게 굶기고 배가 고파 죽은 식구들을 매일 실어 다가 화장하니 이 칼을 받아라'하고 조선어로 외치며 원장을 살해해 원장은 현장에서 안타깝게도 순직했다고 보도됐다. 또한 조선의 제1흉악범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죽인 것처럼 원장을 살해한 이춘상은 그와 같이 제2흉악범이라 소개했다. 다시는 이런 흉악범이 나오지 않도록 치안을 엄하게 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참으로 큰일을 한사람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은 한센병자로 자기 몸도 처신하기 힘든데 보통사람도 못하는 일을 했다. 그를 이 세상에 알리게 된 필자도 흐뭇하게 생각한다. 이춘상은 부산의 인물이고 자랑거리다. 그가 남긴 슬픈 사연과 애국심은 말할 수 없이 많다. 이춘상의 기사를 읽고 비문을 세우자는 온 국민의 모금이 들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기념사업회 집계에 따르면 1400만 원이 모였다. 그의 업적을 새겨 오고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잠시라도 멈추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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