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관부에 물이 오른다. 보이지 않아도 3월엔 쿨렁쿨렁 뿌리에서 줄기로 오르는 힘찬 물의 몸짓이 보인다. 빈 가지 끝에 도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몰래 진해진다. 그예 망울이 터지고 꽃받침이 흔들리고 꽃술이 바람을 팽팽하게 당긴다. 잎새들은 햇살을 품어 뿌리에게 전달한다. 그러면서 스위치를 올린 듯 문득 환해지는 봄.
꽃망울이 터지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봄을 느낀다. 자연스레 근육의 긴장이 풀리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봄은 누구나 저절로 행복해지는 계절이 아닐까. 괜히 킁킁거리며 봄냄새에 취한다. 밥상에는 오른 쑥이랑 냉이가 환기시키는 게 어찌 시간만이랴. 온통 존재의 향기로 출렁거린다. 자연의 위대함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정한 봄이 어찌 꽃에게만 있을까.
정작 피어야 할 것은 마음의 꽃이다. 바깥이 눈부신 봄빛으로 넘쳐나듯 우리 내면 또는 보이지는 않는 모든 관계에도 화사한 봄꽃이 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다. 입춘, 우수, 경칩이 차례로 지날 때마다 바람이 유순해졌다. 봄비가 한 차례씩 다녀갈 때마다 푸른 기운이 확확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자연의 질서 앞에 마음을 여민다.
사람이 꽃핀다는 것, 사람 사이에 꽃핀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리라. 천천히 이웃을 돌아보자. 관심이란 나와 타자를 함께 사랑하는 너그러운 힘이다. 삭막한 가지 끝에 감도는 푸른 물기처럼 먼저 손을 내밀자. 파릇파릇한 마음의 손을 서로 잡아주자.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자. 이름을 불러줄 때 우린 꽃으로 피어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원래 우린 우주 속 한 꽃그늘이며, 서로 감동의 수원지인 것을.
그리고 겸허해지자. 조금씩 자신을 낮은 자리로 내릴 때. 그리하여 살아있는 뿌리를 의식하게 되었을 때 가슴 속 물관부는 천천히 더운 물기로 차오르게 된다. 내가 먼저 꽃피고 다른 사람을 꽃피우는 인내와 관용을 발휘할 때 봄은 완성되며, 바깥의 봄은 더 의미 있는 생명력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인간만한 위대한 자연이 없다. 자신을 덜어내어 다른 사람을 꽃피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타자를 꽃피우게 할 때 다른 사람도 나를 꽃피워주지 않을까. 利他(이타)는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큰 방법이며 가장 절실한 울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