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세력 통합·통일에 노력
안창호 선생은 평남 강서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문을 익힌 뒤 상경하여 1894년 구세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기독교에 입교하면서 근대적 민족의식과 계몽적 사고를 갖게 됐다.
1898년 독립협회 관서지부에 참여하여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미주로 유학한 뒤에는 주경야독하면서 재미동포들의 권익신장과 조국의 국권수호를 위해 1905년 공립협회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피탈되자 1907년 신민회를 결성하여 국권회복운동을 펴며 민족의 실력양성에 애썼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재차 도미하여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으로 미주와 시베리아·만주지역에 지방총회와 지방회를 조직하여 해외한인 연계조직망을 짜고, 초기 상해 임시정부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며 국내외 동포에 대한 정보연락과 통치행정 조직을 꾸리고, 국민대표회의와 민족유일당운동을 주도했다. 독립운동세력의 통합과 통일에 노력하고, 1932년 윤봉길 의거 직후 피체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옥고를 겪은 뒤에도 전국을 순회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동우회사건' 배후 지도자로 지목되어 재차 피체되어 고초를 겪다가 1937년 서거했다.
주요공적
1905 공립학교 설립 계몽운동
1907 신민회 설립 국권회복운동
1919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
1923 국민대표회의 부의장
1930 한국독립당 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