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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백산기념관, 역사·문화 함께하는 공간이면 어떨까?
  • 작성일 : 2019-08-28 10:58:16
  • 조회수 : 50
  • 작성자 : 홍보교육과

주경업의 중구이야기 (67) 백산상회와 안희제

백산상회 1914∼1927년 존속
독립운동의 국내 거점
해외 독립운동자금 조달


중구 용두산의 동편 부산호텔과 타워호텔 길에서 북쪽으로 외길(백산길)을 따라 한 블록을 지나면 오른쪽에 공터가 나오고 삼각형(한옥의 합각) 모양의 땅에 붙은 구조물이 눈에 띈다. 옛 백산상회가 있던 터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백산기념관을 건립하면서 마당을 넓게 쓰기 위해 기념관을 지하에 구축했다. 삼각형 모양의 합각은 옛 백산상회 지붕모양의 특징을 차용해 기념관 조형으로 구성한 것이다. 백산상회(白山商會)는 백산 안희제(白山 安熙濟, 1885∼1943) 선생이 1914년에 설립해 1927년까지 존속했던, 겉으로 보기엔 빈틈없는 무역회사지만 사실 독립운동의 국내 거점인 동시에 해외 독립운동자금의 조달을 위한 이른바 위장회사였다.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설뫼)의 수천 석 토호의 장남으로 태어난 백산은, 재주가 비범해 10세에 능히 사서삼경을 통달하는 등 학문에 뛰어났었다. 21세 때 일제에 의해 을사보호조약이 강제 체결되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해 책을 덮고 시대에 맞는 버금가는 학문을 익히기 위해 과감하게 고향을 탈출(?)한다. 그리고 그해 서울의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다시 이듬해 봄에 양정의숙 경제과에 진학해 23세에 졸업한다. 한편 국내정세는 더 어지러워지고 급기야 1910년 한일합방 체결로 숱한 애국지사들이 해외로 망명길을 떠나야했다. 백산 역시 연해주를 거쳐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톡에 정착하며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에서 애국지사를 만나 독립운동지도자들과 구국방책을 논의하다 귀국해 부산에 정착하면서 애국지사를 도울 방법을 강구하며 백산상회를 설립한다. 고향밭 2000두락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그의 나이 30세 때였다.
표면상의 백산상회는 곡물과 면포, 해산물을 판매하는 개인회사였으나, 어디까지나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 내실은 독립운동의 국내외 연락과 그 자금공급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자본금을 늘려야 했다. 그리고 개인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주주로 참여하는 주요인사를 영남지방 굴지의 대지주들로 모셨다. 경주의 부호 최준·최태욱, 구포 대지주 윤필은의 장남 윤현태와 그의 동생 윤현진, 진주의 대지주 강복순·안의상·정상환들이었다. 최준이 취재역 사장을 맡고 최해욱은 상무취재역, 안희제는 취재역을 맡았다. 자본금도 100만 원으로 늘렸다. 대구·서울·원산·봉천(만주) 등지에 지점 또는 연락사무소를 두면서 활동지역을 넓혀나갔다. 회사의 수지는 이익보다 결손이 더 많았다. 경영의 부실이 아니라 독립운동자금을 회사의 수지와 관계없이 계속 공급하므로 생겨난 경영결과였다. 하지만 이를 아는 주주들은 아무런 불평 없이 적자의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경찰이었다. 어느새 냄새를 맡고 회사를 검색하고 장부를 압수하기도 했다. 안희제도 여러 번 구금당했으나 문서상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았으므로 번번이 무죄 석방됐다. 외면상 조선인이 경영하는 부산에서의 대규모 회사였으므로 일본상인이 판치는 부산에서 백산은 안팎으로 신임이 돈독했다. 그럴수록 일경은 끈질기게 백산상회를 옥죄어왔다. 후원자들을 찾아다니며 압력을 가해 자금원을 원천적으로 막아가며 백산상회의 경영을 방해했다. 급기야 백산상회도 손을 들고 말았다. 안희제도 털털 털고 부산을 떠나 만주로 건너가 대농장 안에 발해학교를 세웠다. 백산의 꿈이 서린 학교다. 독립사상은 민족교육에 있다고 보았다. 자라나는 애국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유학시켜 민족의 동량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임오교변 사건으로 구속된 백산이 모진 고문 때문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해방을 두 해 앞두고 만주 목단강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59세일 때다.
최근 중구청은 1995년에 건립된 백산기념관 건물을 헐고 모양새를 새로 갖춘 백산기념관을 지으려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격에 맞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기념관과 문화관이 함께 갖추어진 문화센터 역할을 하는 역사기념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의:부산민학회 255-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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