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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조선은행, 해방 후 다시 한국은행으로
  • 작성일 : 2016-10-28 17: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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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업의 중구이야기 33 - 한국은행 부산지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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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국내보다 국외 치중한 전형적인 제국주의 금융기관 1964년 한국은행 새청사 완공  한국은행은 1909년 10월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중앙은행이다.  대한제국은 1903년 3월 `중앙은행조례'를 제정공포하고 당시 탁지부(지금의 재무부) 대신 심상훈을 총재로 하고 이용익을 부총재로 임명하여 근대적인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창립준비를 진행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8월에 강제로 체결된 한일협약은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중앙은행 설립을 가로 막고 나섰다. 일제는 1909년 일본의 정계·재계의 거물급 인사를 중심으로 한국은행 창립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은행 설립 업무를 추진하였다. 이들 위원 중 한국인으로서 임명된 사람은 한상룡, 백완덕 등으로 이들은 창씨개명을 건의한 친일파였다.  한국정부의 중앙은행으로 설립되면서 발행주식 10만 주 중에서 3만 주를 한국정부가 인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운영을 위한 경영자 층의 구성에 단 한 사람의 한국인 참여도 허용하지 않고 일본인 일색으로 구성하였다. 이는 한국은행 설립을 계기로 한층 더 강대한 재정권의 실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의 속내였던 것이다. 여하튼 한국은행은 그해 11월 은행 업무를 개시한다.  그러나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1911년 3월 한국은행은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은행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경기를 타고 급격히 팽창하여 1920년에는 자본금이 8천만 원이 되었으며, 조선은행권이 만주의 일본지배지역에서도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은행도 더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여 일제의 침략을 뒷받침해 주었으니, 일본 내에 4개소, 만주에 16개소, 중국에 4개소, 미국에도 1개소 등 조선은행 재외지점이 설립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정작 한국 내에 설치한 지점 및 출장소는 부산과 대구, 목포, 군산 등 10개소 뿐이었다.  조선은행이 한국 내에서 보다 국외지역에 더 치중하였다는 얘기다. 이렇듯 당시의 조선은행은 일제의 침략을 금융 면에서 충실히 뒷받침해 준 전형적인 제국주의 금융기관이었다.  광복 후 미군정기와 1948년 8월의 정부수립 등 정치적 변화에도 조선은행은 큰 변화 없이 중앙은행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다가, 1949년 정부는 국회의결을 거쳐 1950년 5월 다시 한국은행으로 고쳐 부른다. 부산지점은 1910년 4월 18일 조선은행 출장소로 개설되어 그해 11월 지점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은행 부산지점으로 개업한다. 6·25전쟁을 치르는 동안 우리 정부는 두 차례의 화폐개혁을 실시하였는데, 두 번 모두 이곳 부산지점에서 시행하였다.  조선은행 부산지점 건물은 목조 콘크리트 2층 건물로 `ㄱ'자로 꺾어진 곳에 중앙 현관을 두었으며 모서리 지붕 위에 돔을 얹었다. 그리고 1층과 2층 상부에 르네상스풍을 느끼도록 구성하는 등 소규모 건물에 지나친 장식으로 도리어 건물이 가볍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1964년이면 이 건물을 헐고 새 청사를 완공한다. 한국 건축가 1세대인 이천승(1910∼1992)이 설계한 지상 6층의 근대적인 조형과 기능성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금융건축이다. 현재 부산시가 매입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써 원도심 문화 부흥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구심점이 될 예정이다. 문의 ▶부산민학회 255-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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