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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대중가요연구가에게 듣는다
  • 작성일 : 2012-12-03 16:51:44
  • 조회수 : 510
  • 작성자 : 나이스중구

대중가요로 만나는 중구 1-용두산편(2) "불러봐도 대답없는 용두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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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용두산' 흘러간 세월아 갈매기는 아느냐 가로등 불빛 아래 눈물짓는 여인아 임 찾아 왔건만 우리님은 간곳없고 그 옛날 그 자리는 변함없건만 불러본다 불러봐도 대답없는 용두산아  1964년 지금은 가고 없는 그 시절이 남긴 젊은이들의 다정스런 속삭임이 바람결에 들려올것만 같은 곳 용두산 아래에 위치한 정들은 광복동 야시장을 이별해야 하는 괴로운 심정을 삼천포 출신 시민철은 정월산 작사, 유금춘 작곡의 노래 `잘있거라 경상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타향사리 십여년에 환고향 한들 제2고향 경상도를 잊기야 하리 서러운 이별이라 아픈가슴 안고 가나 광복동 야시장 제2송도 그리울때면 한사코 찾아오마 잘있거라 경상도야"  이 노래를 부른 시민철은 1925년 삼천포 출신으로 본명은 김형철이다. 어린 시절 부산으로 이사를 와 대표곡은 `울고 싶은 인생섬' `호남선 가는 편지' `비나리는 삼천포' 등이 있다. 1979년경 은방울 자매의 작은 방울 김향미 외사촌 오빠 김상호와 범어사에서 놀러갔다 과음하고 계단에서 미끄러져 뇌를 다쳐 운명을 달리했다. 1967년 정월산 작사, 김진호 작곡, 성가일의 노래 `울며 헤진 용두산'은 웃고 만나 울고 헤진 첫 사랑을 못잊어 한다. "웃고 만나 울며 헤진 용두산공원 벤치에 쓸쓸하게 낙엽은 지고 찬 바람만 몰아치네 가슴 설레이는 첫 사랑을 속삭이던 그 옛날 아름다운 꿈 찾을길 없는 못잊을 용두산"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정월산과 김진호는 서면에 있던 오메가 레코드와 가야 근교에 있던 대한 레코드에서 활동했으나 근황을 알 길이 없다.  1970년 김종유 작곡, 신숙자가 부른 `천리무정' 마지막 대목에는 천리길 타관에서 용두산에서 맺은 그 사랑을 못잊어 그리워한다. "부산은 천리라고 누가 먼저 말 했기에 천리항구 멀리 두고 그리워서 울었다 용두산에 둘이 앉아 불러 보던 사랑의 노래 항구의 그 사람을 항구에 그 사람을 아-내 어이 못잊어서 내 어이 울고 있나 부산은 천리길" 이 노래를 작곡한 김종유는 1933년 부산 사하구 괴정동 출신이다. 이 무렵 아세아 레코드사에 문예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고향 부산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이 노래를 작곡했다. 노래 `갈대의 순정'으로 뭇 사나이들의 심금을 울린 부산 출신의 가수 박일남은 1971년 이철수 작사, 고봉산 작곡의 노래 `비 나리는 용두산에서 가버린 그 사랑의 절실함을 처음 우는 사나이의 마음으로 묘사했다. "비 나리는 용두산 밤은 깊은데 그대 없이 나홀로 누굴 찾아 왔을까 사랑이 남기고 간 추억이 애달파서 사나이가 처음 우는 비 나리는 용두산"  박일남은 1939년 동대신동 출신이며 콩쿨을 거치지 않고 실력을 인정받아 바로 가수로 발탁된 유일한 가수이다. 대표곡은 `갈대의 순정' `정' `그리운 희야' 등이 있다. 1993년 정원 작사 작곡 이재영이 부른 `잃어버린 용두산'은 불러도 대답없는 그 시절을 노래한다. "흘러간 세월아 갈매기는 아느냐 가로등 불빛 아래 눈물짓는 여인아 임 찾아 왔건만 우리님은 간곳없고 그 옛날 그 자리는 변함없건만 불러본다 불러봐도 대답없는 용두산아" 가수 이재영은 1960년 경남 산청 출신이다. 2001년 진주 남인수 가요제에서 일등을 수상하고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일본으로 진출해 주로 밤무대에서 활동하며 우리 노래의 위상을 높인 가수이며 `잃어버린 용두산'의 그 시절을 노래하며 우리 전통가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 네이버 카페 `옛날가요 보존회'(//cafe. naver.com/chonguk49)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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