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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문화재를 만나다 3 - 영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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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나이스중구

"애환 서린 추억의 장소, 새로운 역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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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하면 떠오르는 다리가 있다. 옛 추억과 부산의 정취가 묻어있는 `영도다리(영도대교)가 바로 그 곳'. 부산 사람이면 누구나 영도다리에 대한 추억 한 자락쯤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의 하나다.  부산 중구 중앙동과 영도구 대교동을 잇는 영도대교는 2003년 안전 진단 검사에서 위험 등급을 받아 철거의 위기에서 찬반론을 거듭하다 2006년 11월 25일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56호로 등록되어 확장 복원 공사에 들어갔다.  부산의 발전된 모습과는 동떨어진 것 같지만 어린 시절 낚시하는 어른을 따라 구경 갔던 추억이 오롯이 묻어있는 곳이다. 1982년 부산대교가 준공되기 전까지 영도와 부산 도심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였다. 영도대교는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한 보급 및 수송로 구축의 일환으로 1934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연륙교이자 유일한 도개식 교량이다. 또한 한 쪽만 들리는 우리나라에서 하나 뿐인 단엽식 도개교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크다. 중대형 선박이 오면 다리 한쪽을 올려 통과시키는데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1935년에는 다리 위에 전차 궤도를 설치하여 전차를 운행하기도 하였다. 영도다리는 1966년 영도구의 인구 증가에 따른 교통량 증가로 도개를 중단하고 전차 궤도도 철거되었지만 6.25 한국전쟁 때는 부산 지리를 모르는 피난민들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만남의 장소였다.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가족의 생사를 묻는 점집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한 때는 다리 밑 점집이 50집이 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많던 점집이 자취를 감추고 겨우 서너 집이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사람들은 동네 어른들께 "니 영도다리에서 줏어 왔다"라는 말을 한 번씩 들었을 정도로 추억이 어린 곳이다.  민족의 수난과 6.25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긴 영도다리가 한국 근대사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인정되어 철거의 위기를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새 역사를 준비 중이다. 길이 214.7m, 너비 25.3m의 왕복 6차로로 확장하고 40년여 만에 중단된 도개 기능도 복원할 예정이다.  2013년 복원 공사 완료에 맞춰 전시관도 개관하여 영도대교의 역사적 의미를 새기는 공간이자 전망대를 마련한다고 하니 부산 시민이 가깝게 접하는 새로운 친수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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