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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동 봉래권번
  • 작성일 : 2002-02-08 18:16:00
  • 조회수 : 123
  • 작성자 : 나이스중구

중구 옛자취를 찾아서… 〈4〉

 1922년 12월 30일 오늘의 중구 영주동 52번지에 "봉래권번(逢萊券番)"이라는 기생조합이 생겼다. 이 봉래권번은 1915년께 영주동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초량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이런 봉래권번에는 대구이 경상감영(慶尙監營)과 동래부에 예속돼 있던 관기들 가운데서 한일합방으로 말미암아 자유로운 몸이 되어 부산으로 찾아 왔다가 여기에 적을 둔 사람들이 많았다.  1915년 무렵에는 부산이 용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오늘의 중구 지역 사회가 한창 개발돼 나가기 시작했던 때여서 그런 건설붐을 따라 일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국내 곳곳에서 부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와 같이 부산에 사람들이 붐비는 시대 사회를 배경으로 등장했던 것이 봉래권번이라는 기생조합이었다. 이 봉래권번 소속 기생들은 처음에는 영주동과 초량 일대에서 위탁 판매업을 벌이고 있던 객주업자들이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의 동해안에서 명태와 북어 따위를 배에 싣고 부산에 찾아 들었던 수산물 상인들에게 식을 제공했을 때 청요리를 시켜 사랑방에다가 떡 벌어지게 차려 놓았던 술자리에서 시중을 들었었다. 이렇게 해서 객주업자들은 화주(貨主)들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는 한편으로 위탁받은 상품의 판매고에 따라 수수료를 받아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번창해 나가던 영주동∼초량 일대의 객주업도 일본 수산업자들의 대거 진출로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주 쇠퇴해 버리고 말았다.  봉래권번 기생들은 거의가 영주동에 살고 있었는데, 전성기를 이루던 1939년께는 조합원수가 70명을 훨씬 웃돌았다.  8.15해방 이후부터는 `비 온 뒤 죽순' 꼴로 숱하게 많이 생겼던 요정마다 전속 기생들을 두는 바람에 기생조합도 저절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른바 권번기생들도 낮에는 대중식사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 요정업을 차린 술집에서, 밤에는 안방 술집으로 나서는 접대부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 나가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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