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광장
구민이 주인되는 행복도시 중구
총게시물 : 5건 / 페이지 : 1/1
- 전국 제일의 수산축제로 자리매김 자갈치 축제를 마치며 올해 7회째로 개최된 2002 부산자갈치축제는 아시안게임의 문화행사로 치러지면서 그 어느 해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축제장을 찾아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막을 내렸다. 특히 올해는 수산과학전관 및 범선모형전시관, 어탁전시관 등 다양한 수산관련전시행사들이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올해 첫선을 보인 맨손으로 장어 잡기, 낙지 속의 진주 찾기, 오징어 먹물 사격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에 대한 관광객들의 직접적 참여도 높았다. 또한 아시안게임과 같은 기간 내에 개최되는 관계로 준비했던 아시아의 전통무용공연이라든가 우리가락한마당과 같은 문화공연행사도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이로써 이제 부산자갈치축제는 해가 갈수록 명실공히 부산을 대표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수산물축제로서 정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먹거리 장터운영에 있어 나타난 일부 상인들의 서비스정신부족과 같은 문제점은 축제본부와 시장상인모두가 자갈치축제를 앞으로 좀 더 수준 높은 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해 보완하고 개선해야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김성진(자갈치 홍보팀장)
-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만남 금관가야 `철의 문화'를 37억 아시안인에 전함 2002년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대회 이념을 "희망과 도약, 새로운 아시아"로 정하고 37억 아시아인의 화합과 번영의 대축제가 9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부산을 비롯한 울산과 경남일원에서 펼쳐졌다. 아시아인의 "화합과 번영"의 뿌리를 2, 000년전 이 지역 문화권인 금관가야국(가락국)의 김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공주 허황옥의 만남에서 찾아, 아시아44 개국의 "아름다운 만남"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개회식 주제로 하였다. 29일 오후6시 대회 엠블렘이 그려진 깃발을 든 기수단이 "어서 오이소" 글자를 만들며 경기장에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하여 동래여고생 등 500여명으로 백, 황, 청, 적, 녹색 주황 옷을 입고 무용이 펼쳐졌으며 나팔소리와 난타로 경기장을 진동시켰다. 이어 각국 선수단이 기수를 앞세우고 네팔을 선두로 가나다순서로 입장하는 참가국 중에는 얼마전 UN에 가입한 동티모르와 내란에 휩싸여있는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참가가 이채롭고 아시아의 빅3 중 중국과 일본은 많은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북한과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손을 맞잡고 많은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으며 입장하였다. 남북한 동반 입장의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아름다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만남'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만남으로 이어져 37억 아시아인은 하나가 되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이번 개회식에서는 고대국가인 금관가야의 수로왕과 동과 남으로 수만리 거리에 있는 인도 아유타국공주 허황옥과의 만남을 오늘에 재연시켜 37억 아시아인의 화합과 번영을 상징한 점과, 남북한의 선수가 손을 맞잡고 동시에 입장하여 6만 관중의 환호를 받음으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앞당길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향토사학자 김인덕
- 설악공룡은 살아있다 - 가는날:2002. 10.12∼10. 13 (무박 2일) - 산행길:부산(22:00)→설악동(04:30)→비선대(05:20)→양폭산장(07:00)→무너미재(08:00)→1275봉→마등령(12:00)→비선대(14:20)→설악동(15:30) 부산에서 밤 10시가 넘어 출발하여 남해고속도로와 구마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설악동에 새벽 4시30분 도착 인원 점검 후 렌턴을 켜고 다들 빠른 걸음으로 비선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둠을 헤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느 듯 비선대에 도착, 철계단 우측 오르막길은 금강굴, 마등령길이고 좌측은 천불동 계곡, 회운각 산장 길이다. 천불동 입구인 비선대는 여명에 싸여 아직 설악산 최고의 단풍을 볼 수가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한시간 쯤 더 오르다가 어째 좀 으스스한 이름의 귀면암에서 숨을 돌리고 목을 축이고 나니 정신이 든다. 오련폭포를 지나 양폭산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이들이 아침 식사 중. 김밥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나서 양폭을 지나 철계단을 오르니 천당폭포의 맑은 계곡수와 천불동 계곡의 단풍이 황홀의 경지로 빠뜨린다. 아침 햇살의 조명을 받아 붉고 노란 단풍은 더욱 빛을 발하고 계곡 양쪽 거대한 기암절벽은 계곡 이름에 걸맞게 천 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듯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어 가슴이 떨려 온다. 아침을 먹어 선지 발걸음이 무거워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가 더욱 힘이 든다. 안간힘을 다하여 발길을 옮기면서도 눈길은 가을의 향연이 펼쳐지는 천불동 계곡 단풍 절정의 선경을 가슴속 깊이 담는다. 회운각 산장과 공룡능선, 천불동 계곡의 삼거리인 무너미재(해발1020m)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면서 둘러보니 대청봉 쪽에서 하산하는 사람 등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을 하며 공룡능선에 들어서자마자 무지의 세계에 들어선 듯 마음과 눈이 바쁘기만 하다. 신선암에 올라 휘둘러보니 앞쪽 저 멀리 울산바위가 옷을 벗은 듯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오른쪽은 외설악으로 천불동 계곡, 화채능선, 동해바다가 좌측은 내설악으로 용아릉과 가야동계곡이 펼쳐지고 뒤쪽은 대청봉과 중청이 떡 하니 버티어 서있다. 절경을 담아보려는 욕심에 카메라를 꺼내어 몇 컷트 하건만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 말로도 표현이 힘든 이 경관의 아름다움을 내 사진술로 촬영한다는 것이 무리 인 듯 하여 고개를 돌려 눈만 깜박깜박. 계속되는 암벽길을 네발로 세발로 걷다보니 눈앞에 커다란 암봉이 나타난다. 1275봉으로 공룡능선 산행 절반쯤에 도달한 듯 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천불동 계곡 쪽 천화대는 멀리 동해바다와 화채능선을 배경으로 귀암괴석이 기기묘묘함을 연출하고 오색단풍이 수를 놓아 공룡능선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환호와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또한 용아릉은 설악산 중 가장 위험한 등산로로 산행이 통제되여 멀리서 바라보니 용의 이빨처럼 뽀족한 암봉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수렴동계곡 단풍도 비단을 깔아놓은 듯 알록달록 최고가의 한 폭의 그림이다. 몇 고비 험로를 지나고 나한봉을 우회하여 무너미재를 출발한지 네시간만에 공룡능선 종주의 목적지 마등령에 도착. 안동소주 한잔 꿀맛!! 설악공룡 능선은 마등령에서 남동쪽 회운각 산장이 있는 무너미재까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5.1㎞의 능선으로 수억년 전의 공룡이 살아 있는 듯 화려한 단풍으로 곱게 물든 웃을 차려입고 나한봉과 1275봉 등 거대하고 기괴한 바위는 공룡의 등뼈의 위용을 뽐내며 많은 사람에게는 희열과 행복함을 선사한다. 온종일 감탄사를 연발하여 아직까지 벌어진 입아귀가 저리나 마음만은 풍만하여 새상 어느 것도 부러운 것이 없다. 단풍객으로 정체된 영동고속도로로 인해 새벽 3시에 부산에 도착하였지만 내생애 최고의 멋지고 멋진 산행으로 같이한 키 큰 사나이와 함께 만세다!!! 김재윤(문화공보과)
-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별별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날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前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助言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車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작자미상(동아 2002/09/13) 박만춘님께서 명상의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등 대 신배선(주부·영주2동) 가까이 가면 큰 등대는 팔층 높이에서 보면 키가 작다 그곳을 떠나고 싶은 얼굴은 고민이 많다 번쩍이는 배의 유리에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짓궂게 장날 걸어오는 바닷물에 온 몸 적셔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둠이 덮혀지면 침묵을 입고 누군가를 향해 멀리 멀리 소리친다 방파제는 몇 조각으로 나누어지고 그 끝에서 홀로 서서 위태롭게 휘청인다 어디로든 갈 수 없어 여기 서 있지만 오늘은 모든걸 털어내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 그 붉어진 몸을 식히고 싶다 그렇게 꿈꾸며 서 있는 등대